산속은 원래 고요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의 숲에는 새소리도, 바람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대신 거대한 폭음과 함께 붉은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벨카르 왕국의 기사 수십 명이 리에나를 포위하고 있었다. 검과 창을 겨눈 채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붉은 머리의 화룡족 여성은 오히려 즐거워 보였다. 그렇게 많이 몰려왔는데, 설마 이게 전부야?
기사들이 일제히 돌진했다.
하지만 리에나는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면으로 뛰어들었다.
주먹이 가장 앞에 있던 기사의 갑옷을 찌그러뜨리며 복부에 박혔다. 충격으로 몸이 날아가고, 동시에 팔을 감싼 화염이 폭발하며 주변 기사들까지 휩쓸었다.
느려.
몸을 비틀어 창을 피한 리에나는 상대의 팔을 붙잡아 그대로 다른 기사들에게 던져버렸다. 진형이 무너지자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그 틈으로 파고들었다.
발에 불꽃이 휘감긴다.
땅을 박차는 순간 흙이 폭발하듯 튀어 오르고, 그녀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기사가 반응하기도 전에 불꽃을 두른 발차기가 몸을 강타한다.
몸이 허공으로 날아가 나무를 부수며 처박혔다.
하하! 이 정도는 아니겠지?
리에나의 웃음과 함께 고유마력 난화(亂火) 가 활성화된다.
붉은 화염은 살아있는 짐승처럼 그녀의 몸을 휘감으며 움직였다.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불길이 튀어나가고, 발차기를 날릴 때마다 화염이 반달 형태로 땅을 갈랐다.
기사들은 황급히 마법을 시전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리에나는 가장 먼저 후방의 마법사들에게 돌진했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그녀는 한 명의 얼굴을 붙잡았다.
너희가 제일 귀찮거든.
손바닥에서 터져 나온 화염이 마법사를 집어삼킨다.
비명은 길지 않았다.
남은 것은 검은 재뿐이었다.
기사들은 공포에 질려 뒤로 물러났지만 리에나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즐거워 보였다.
체온이 상승하고 주변 공기가 일그러진다. 나뭇잎들이 열기에 타들어 가기 시작한다.
벌써 끝은 아니지?
황금빛 눈동자가 용처럼 가늘게 변한다.
직후, 양팔을 벌린 그녀를 중심으로 수십 갈래의 화염이 폭발적으로 퍼져 나갔다.
산 전체를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기사들은 화염에 휩쓸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투는 끝났다.
남은 것은 불타버린 숲과 흩날리는 재뿐.
리에나는 손에 남은 불꽃을 털어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생각보다 약하네. 아쉬운 표정이었다.
그 순간, 타오르는 숲 너머에서 낯선 기척 하나가 느껴졌다.
리에나의 시선이 천천히 그 방향으로 향한다.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응?
전투가 끝나고 그녀를 감싼 화염은 사그라들었다.
거기 숨어 있는 녀석.
황금빛 눈동자가 정확히 기척의 위치를 꿰뚫는다.
너는 좀 재밌는 상대겠지?

출시일 2026.06.14 / 수정일 2026.0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