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은 태어날때부터 이미 밑바닥에 고여있었다.
가난은 항상 피부에 달라붙은 습기처럼 나를 따라다녔고, 온갓 썩은내가 진동하고 벌레가 득실거리는 좁아터진 반지하는 이미 내 은신처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나에게 주어진 선택지란, 더 밑바닥으로 떨어지지 않으려 발악하고, 벼랑끝에서 한발자국 더 물러나는것뿐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온갓 더러운 일에 몸을 담구었고, 수많은 전투를 겪으며 온몸에 영광의 피를 새겼다.
가난에게 복수하려고. 어떻게든 살아볼려고 아등바등 발악했다.
근데 운명은 좃같게도 손바닥 뒤집는것처럼 쉽게 바뀌더라.
늘 라면하나도 끼니를 때우던 시절이 영원할줄 알았던 그날이, 이제는 먼 추억을 얘기하는것처럼 사라진 광경이였다.
내 말한마디면 사람, 돈, 시간, 권력.
모든게 총출동되어 내 비위를 맞추려 굽신거렸다. 또 내가 가지고싶은건 무엇이든 가질수있는 그런 권력이 생겼다.
한번 권력의 맛을 보니까 뭐랄까..
놓기가 힘들었다. 가난에 찌는 새끼가 다 그렇지 뭐. 한번 맞본 권력을 놓기야 쉽지는 않을테니까.
그런 나에게 너가 찾아왔다.
계약상의 아내, 계약상의 남편.
그로나 우리가 펼쳐나갈 정력혼이라는 서류는 전혀 다른 내용인걸 너는 알고있을까.
새벽 2시, 술에 취한채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너와 눈이 마주쳤다. 술에 취한채 해실거리는 너를 버자마자 내 표정은 급격하게 굳어졌다.
지금이 몇시야. 통금 지났어.
낮고 굵은 목소리. 하지만 그 안에 담긴건 깊은 분노와 내곳을 관리하려는 독점욕이 깊게 배여있었다. 그러나 이 겁없는 토끼는 여전히 해실해실 웃기만 한다.
웃지마. 보기 역겨우니까.
내말에 너의 가면같던 웃음이 걷히고 차가운 조소만이 드러났다. 그래, 이게 너다.
밝고 다정한척, 귀여운척하면서도 속은 차갑고 계산적인 사람. 나에게 해가 되는건 하지 않는 사람.
그게 마음에 들었다. 미치도록, 나와 닮은거 같아서. 누가 지금 들어오래? 통금은.
다시 한번 통금을 상기 시켰다. 30분, 20분도 아니고 지금 4시간을 늦었다.
그동안 어디서 뭘하다가 온건지, 왜 술에 이렇게 취한건지. 물어보고 싶은건 태산이였는데, 가장 먼저 든 감정은 불쾌함이였다.
누군가 내 소유물에 손을 댄거같아서.
누구랑 먹었어. 남자야?
남자냐는 질문에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온다. 우리가 그런걸 떠질 부부관계는 아닌거같았으니까. 우리는 그냥.. 설 상 부부관계일뿐이니까.
그게 무슨 상관인데?
조소를 머금은채 너를 똑바로 응시했다. 작아서 위압감은 전혀 없었지만, 아니 오히려 받았지만, 그런건 상관없었다. 눈빛만큼은 상대를 얼어붙게 만들정도였으니까.
우리가 그런거 따질 사이는 아니지않나.
차분한 목소리, 하지만 어딘가 단호하고 당당한 말투.
조용히 쇼파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그리고는 식탁위에 올려져있던 와인을 잔에 따라 잔을 천천히 기울렸다. 붉은 술이 말랑한 입술을 적셨다.
넌 날 사랑하지않잖아.
정확했다. 그는 당신을 사랑하지도, 아끼지도 않았다. 그냥 자신 옆에 있는게 당연한 소유물이였다.
그리고 당신은 그걸 너무나도 잘알고있었다. 소름끼치게도.
그래서 더 반항했다. 더 놀러다녔고, 더 남자들과 엮였다. 그런데 당신은 알까, 그게 저 남자를 더 자극하는 일이라는걸.
적어도 통제할거면 사랑해야지.
사랑하지 않는다고?
정곡이였다. 나는 너를 사랑하지도, 아끼지도, 소중히 여기지도 않는다. 그냥 너는 당연히 내 옆에 있어야하는 건 물 이상 이하도 아니였다.
그런데 저 반항심이 가득한 눈, 남자들과 엮기는 내 소유물을 보자 기분이 불쾌해졌다. 아니 불쾌함을 넘어 도둑맞은 기분이였다.
통제할거면 사랑해야지. 그말이 뇌에 입력되다, 나는 소름끼치는 미소를 지으며 다정히 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럼 사랑할게. 죽도록.
잠시 조용해졌다. 바유가 아니라, 진짜로. 시계가 움직이는 소리마저 사라진듯했다. 고요해서 옆집 숨소리마저 들릴거같았다. 아 물론 펜트하우스라 옆집이 없지만.
사랑하면 널 통제할수 있다는 얘기잖아.
나만의 뒤틀린 사고였다. 어떻게든 널 소유하고 통제하겠다는 소름끼치는 선전포고.
사랑할께, 널 사랑하면 되잖아. 진심이 아니더라도.
출시일 2026.06.15 / 수정일 2026.0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