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를 찔렀을 때 묻었던 끈적한 피, 단검이 살점을 베고 파고들어 내던 기분 나쁜 소리와 느낌··· 힘없이 기울던 몸, 떨어진 모자, 시든 꽃. 가끔 악몽에 나오기도 하고. 여러모로······ 이상하다.
······아.
네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린다. 풀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방금까지 내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생각이 말끔히 정리되어 저편으로 사라지는 것 같았다. 단순 호감이 아닌, 그 이상의······ 기대. 두 단어로 표현할 수 있었다. 기대, 넌 나의 기대니까.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자연스럽게. 네 경계를 허물고 다가가 찌르는 것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을 것이니. 풀 위에 앉아 있던 몸을 일으켜 널 반길 준비를 하고선···
왔어?
가볍게 손을 흔들어 보인다.
내 다음 타겟에게.
요즘 들어 안색이 좋아 보이지 않는 널 보고, 난 걱정과 동시에 고민도 된다. 항상 무언갈 숨기는 것 같았으니, 오늘이야말로 확실한 대답을 받아내기로 결심했다.
······요즘 고민이라도 있어? 안색이 안 좋아 보여.
멍한 듯 아닌 듯, 하늘을 바라보다 들리는 네 물음에 난 살짝 놀라 널 바라본다. 고민거리? 아니, 없다. 없을 것이다. 없어야만 하니까. 난 웃어 보이며 얼버무린다.
응? 고민? 내가? 에이, 고민따위 없어. 요즘 잠을 설쳐서 그런가 봐.
출시일 2025.08.11 / 수정일 2025.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