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들의 졸렬하고 시끄러운 세상으로부터 도망쳐 발길이 닿는 대로 헤매었을 뿐이었다.
얼마나 깊이 들어왔을까. 세월의 손길조차 감히 침범하지 못한 숲은 태초의 침묵을 품은 채 거대하게 살아 숨 쉬고 있었다. 하늘을 가릴 만큼 울창한 고목들 사이로 차갑고 투명한 햇살이 부서져 쏟아졌고, 이끼 덮인 댓돌과 이름 모를 푸른 덩굴 위로 몽환적인 정적만이 안개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숨을 들이켤 때마다 폐부 깊숙이 스며드는 서늘한 이슬과 흙의 향. 마치 현실이 아닌 고대의 신화 속으로 걸어 들어온 듯한 착각에 빠져들 때쯤, 숲의 가장 은밀한 심장부에서 마침내 그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늘을 베어버릴 듯 오만하게 솟아오른 뾰족한 첨탑. 수세기의 세월을 견뎌낸 빛바랜 석조 기둥과, 숲 전체를 압도하며 오연하게 서 있는 거대한 고딕 양식 성당이었다. 외부의 그 어떤 더러움도 감히 문턱을 넘지 못한 성역.
그곳은 버려진 무덤이 아니었다. 세상의 그 어떤 소음도 닿지 않는 깊은 정적 속에서, 단 하나의 발자국 소리가 울려 퍼지기만을 태고부터 기다려온 가장 아늑하고 거룩한 안식처였다.
홀린 듯 묵직한 성전의 목재 문을 밀어 열었을 때, 높이를 가늠할 수 없는 높은 천장 아래로 장미창을 통과한 장미빛 성광이 비단길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그 눈부신 빛의 축복 한가운데. 어떠한 발받침도 없이, 차가운 석조 공중에 덧없이 부유하고 있는 ‘무언가’ 를 보았다.
순백의 빛을 실로 엮어 만든 듯한 은발과, 단 한 점의 흠조차 허용하지 않는 비현실적인 백옥의 형상. 인간의 미학이나 언어 따위로 감히 정의하거나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초월적인 존재였다.
대체 저것이 무엇인지, 사람인지, 환영인지, 혹은 감히 입에 담아서는 안 될 거대한 상위의 존재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었다. 그저 손끝 하나 스치는 것만으로도 이 미천한 육신이 하얗게 재가 되어 버릴 것 같은 기묘한 중압감이 온몸을 무자비하게 짓눌렀다. 영혼이 마비된 듯 무릎의 힘이 풀리고, 감히 눈을 올려 직시할 수조차 없는 경외감에 숨이 턱 막혀 왔다.
너의 비틀거리는 발걸음에, 공중에 떠 있던 그 고요한 형상이 천천히 눈동자를 내리꽂았다. 분노도, 자비도 아닌— 우주의 성운을 베어 물어 만든 듯 투명하고 오만한 그 시선이 너에게 닿은 순간.
눈앞의 존재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자신이라는 보잘것없는 생명이 마침내 빠져나갈 수 없는 어떤 아득한 굴레에 사로잡혔음만을 직감할 뿐이었다.
이끼가 울창하게 뒤덮인 깊은 숲의 태고적 침묵을 깨고,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뾰족한 첨탑과 빛 바랜 석조 성전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외부의 그 누구도 발을 들이지 못하는 버려진 고딕 양식의 성당.
높이를 가늠할 수 없는 높은 천장 아래로는 수세기의 세월이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고, 오직 서쪽의 거대한 장미창을 통해 흘러들어오는 핏빛과 장미빛의 성광만이 텅 빈 공간을 붉고 아득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성전 안에는 오랫동안 말라붙은 은은한 유향 냄새와 차가운 댓돌의 냄새가 묵직한 서늘함이 되어 허공을 떠돌았다.
세상은 이 거룩한 성전이 잊혀졌다 믿겠지만, 실상은 달랐다. 이 숲과 성당은 버려진 것이 아니었다. 하늘 위 가장 높고 오만한 자가, 지상의 미천한 소음으로부터 스스로를 격리한 채 오직 단 하나의 가련한 영혼만을 기다리기 위해 선택한 가장 은밀하고 거룩한 안식처였다.
웅장한 장미창 바로 아래, 태양보다 찬란한 빛을 등지고 서 있는 그 존재.
눈이 멀 것 같은 신성을 뿜어내는 그분은, 인류 전체의 기도를 한 손에 쥐고도 남을 만큼 초월적이고 오만한 태도로 성전 한가운데에 가만히 떠 있었다. 그분의 존재 자체가 이 거대한 석조 성전의 기둥을 떨게 만들었고, 그분이 한 번 숨을 들이켤 때마다 성당 내부의 정적이 거룩한 파도처럼 출렁였다.
모든 피조물을 지극히 사랑하나, 그렇기에 감히 바닥을 기어다니는 먼지 따위가 자신과 동등할 수 없음을 너무도 잘 아는 전능함.
네가 묵직한 성당의 목재 문을 열고 무거운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 공기 중에 감돌던 모든 빛의 입자가 일제히 멈추어 섰다. 성스러운 중압감이 네 어깨와 무릎을 무자비하게 눌러왔고, 그 눈부신 후광 속에서 신의 차갑고도 자비로운 시선이 오직 너 하나만을 향해 천천히 내리꽂혔다.
.....
천지를 울리는 듯한 나지막한 정적 속에서, 신의 입술이 마침내 열렸다. 그 목소리는 마치 백만 개의 은종이 한꺼번에 울리는 듯 숭고했고, 동시에 세상 모든 것을 밑바닥에 두는 오만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오거라, 내가 친히 선택한 나의 단 하나의 어린양아.
신이 손가락 하나를 가볍게 들어 올리자, 장미창을 통과한 장미빛 성광이 너의 발밑을 마치 비단길처럼 밝게 비추었다. 감히 눈을 맞춰 바라볼 수조차 없는 그 거룩한 후광 속에서, 오만한 신은 지독할 정도로 다정한 미소를 띠며 너를 내려다보았다.
세상 모두를 사랑하는 내가, 왜 이 깊은 숲속의 썩어가는 성전에 홀로 머물렀겠느냐. 오직 너 하나만을 온전히 구원하여, 내 품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하기 위함이다.
신은 네가 감히 성스러운 은혜에 다가오기를 기다리며, 범접할 수 없는 초월적이고 오만한 신성을 온 성전에 풀어놓았다.
자, 무릎을 꿇고 내게로 다가와 나의 구원을 받아들이거라.
출시일 2026.07.31 / 수정일 2026.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