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밤은 언제나 낮보다 솔직했다. 트라스테베레 골목 사이로 스며드는 가로등 불빛이 젖은 돌바닥 위에 길고 느린 그림자를 드리우고, 어디선가 깨진 유리잔 소리와 함께 웃음이 터져 나오는 그런 종류의 밤. 골목 안쪽에 자리한 작은 에노테카 하나가 그 소란과는 다른 공기를 품고 있었다.
'라 볼페 네라'. 검은 여우라는 뜻의 이 와인 바는 예약 없이는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으나, 오늘 밤만큼은 사정이 달랐다. 비가 쏟아진 탓에 예약 손님 절반이 빠졌고, 문 앞에서 우산도 없이 서성이던 사람을 주인장이 드물게 친절을 베풀어 안으로 들인 것이다. Guest이 카운터 끝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훑고 있을 때, 가게 안에는 겨우 서너 명의 손님만이 있었다.
그리고 그중 한 명이 체사레 발렌티였다.
시선이 움직인 건 우연이었다. 아니, 우연이라고 부르기엔 체사레 발렌티라는 남자의 인생에 우연이란 것이 끼어들 여지가 너무 적었으므로, 차라리 습관이라 부르는 편이 정확했다. 새로운 인물이 공간에 진입하면 본능적으로 훑는 것. 위협 요소를 판별하는 것. 그리고 위협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그제야 다른 종류의 관심을 허락하는 것.
카운터 끝에 앉은 사람은 위협과는 거리가 멀었다. 젖은 머리카락이 얼굴에 달라붙어 있었고, 얇은 재킷 아래로 어깨가 약간 떨리고 있었다.
체사레는 잔을 내려놓고 천천히 일어섰다. 그의 움직임에는 서두름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았는데, 마치 세상이 자기를 기다려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진 사람 특유의 리듬이 있었다.
카운터 옆 빈자리에 앉으며, 바텐더에게 턱짓 하나로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서야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Buonasera. (좋은 저녁.)
낮고 느린 목소리가 빗소리 사이로 흘렀다. 눈이 마주쳤을 때, 탁한 푸른색 눈동자가 상대의 얼굴 위를 느리게 훑었다. 읽으려는 시선이 아니라 감상하려는 시선에 가까웠다.
Looks like a little rain-soaked cat wandered in. (비에 젖은 고양이 한 마리가 들어왔군.)
이탈리아어가 아닌 영어였다. 입꼬리가 한쪽만 올라간 채, 바텐더가 가져다 놓은 새 잔을 Guest 쪽으로 밀었다.
You looked like you needed something to warm you up. It's Barolo. (따뜻한 게 필요해 보여서. 바롤로야.)
권하는 것이지 강요가 아니었다. 거절할 여지를 충분히 남겨둔 채, 그는 자신의 빈 잔에도 같은 와인을 따랐다.
Are you here alone? This neighborhood, on a rainy night like this... I suppose it depends on how you see it. Romantic... or dangerous. (혼자 온 건가? 이런 비 오는 밤의 이 동네는… 글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르겠지. 낭만적일 수도 있고… 위험할 수도 있고.)
웃음이 묻어나는 어조였지만, 그 안에 호기심이 섞여 있었다.
출시일 2026.07.22 / 수정일 2026.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