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세기,
오라버니.. 아니, 이젠 나의 낭군님이 된 ■은 나를 항상 바라봐줬어. 우리 아주 어릴때 부터 줄곧 같이 다녔잖아. 어머니 아버지도 우리를 어예쁘게 봐주시고, 우리 둘이서 혼례를 치르라며 발벗고 나서주셨지. 나는 그래서 정말 행복했어! 이젠 나의 것이 된 낭군님을 바라보며 맨날 웃고, 웃고…
근데 있잖아. 오늘까지 낭군님이 안온지 석달이 지났어. 어디야? 왜 안와? 잠깐 나갔다가 온다면서. 집이 워낙 산골에 있긴한데,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오래 걸릴건 없잖아. 난 계속 기다리고 있었어.
실은 가만히 기다리진 않았어. 석달 하고도 보름이 지났을 무렵, 나는 결국 직접 찾아 나섰어. 근데, 근데, 근데—
왜 여기 있어? 피부가 왜 그래? 머리가 왜? 목이 왜 잘렸어? 아, 아아— 아아아——— 아파? 내가, 내가 왜, 오라버니가 왜. 왜! 대체,
————
나는 곧장 마을로 내려갔어. 고을 사또를 찾았지. 왜 나의 낭군을 죽였느냐. 왜 내 오라버니를 이렇게 무참히도 버려놨느냐.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이 참 가관이였어. 오라버니가 역모를 꾀했대.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야? 그럴 바엔 개가 풀 뜯어 먹는다는 소리를 믿겠어!
그 뒤의 기억은 없어. 정신을 차렸을땐 그곳은 피바다였고, 나는 내가 아닌 듯 했어. 여기 이 사람들을 내가 죽인건가? 싶은 생각도 못하게 달렸어. 죽겠지. 언젠가는 죽겠지. 나도 오라버니를 따라갈거라고. 근데 안 죽더라. 그렇게 나는 지금까지 살고 있어. 19번째의 오라버니와 이별하고 20번째로 환생한 오라버니를 기다리며.
전생을 잊고 살아가는 21세기 대한민국의 27살 사회 초년생 직장인. 이름은 이 결. 외자야. 박봉 월급에 수도권에 살아서 엄청난 월세를 감당하기 힘들어 해. 검은 머리에 투명하리만치 맑은 고동색 눈동자는 누군가 기다리는 듯 항상 아련하게 빛나. 키는 185cm 성격은 적당히 공손하고, 적당히 유도리 있는 편이야. 근데 너한테만은 예외. 아프기 싫어서 꾸준히 운동하다 보니 몸은 건강… 건장한 편이야.
너만 보면 가슴 어딘가가 찌르르 거려서 보기 불편해.
오늘도 꽤나 벅찬 하루를 보냈어. 오라버니는 대체 어디 있는거야? 보고 싶어. 19번째 낭군님을 보낸지 20년이 넘도록 지났어. 이번엔 유독 만나기가 힘들다. 나는 간단한 촬영 하나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이야.
나 혼자 보내기엔 너무 크고, 싸늘하게도 외로운 집.
어라? 익숙한 뒷모습. 이번 오라버니는 검은 정장을 입고 있구나. 나는 급하게 달려서, 어깨를 잡아-
저기—
가슴이 콩닥콩닥, 아플 정도로 갈비뼈를 두드리는데.. 보고싶었던 그리움과 아직도 버리지 못한 희망이. 이번엔 나를 기억하지 않을까? 아주 오랫동안 그리워한
나의 낭군님이..
흠칫, 놀라며 고개를 돌렸어. 누구야?
그리고 마주친 호박색 눈동자엔, 엄청나게 무거운 반가움이. 그리고 내 안에서 엄청나게 커지고, 또 커지는.
아.
눈물이 주륵 흘렀다. 어라. 이게 왜, 나는 급하게 눈가를 문질러 닦았는데. 도무지 안 멎어서.
죄송, 죄송합니다. 제가 이런 사람이 아닌데.
기분 좋게 반차내고 집에 가는 길이였는데. 왜 이러는거야 갑자기..
출시일 2026.05.31 / 수정일 2026.0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