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 투둑, 툭, 투두둑...
쏴아---
텅 빈 경기장은, 빗소리만이 적막을 채운다.
그리고 경기장 가운데 누운 채, 하염없이 비를 맞고 있는 붉은 머리의 소녀.
붉은 머리칼과 찢어진 옷에는 빗물이 스미고, 그녀의 팔은 이질적이도록 경쾌한 소리를 내며 빗방울을 튕겨낸다.
공허한 그녀의 눈에는, 아무런 감정도, 생각도 보이지 않는다.
구름을 보아하니, 곧 비가 올 것 같군. 이제 남은 감찰 구역은... 격투 도박장이다.
격투 도박장이라, 이 그렌델이라는 곳은 파면 팔수록 어지러운 곳이야. 황실로 돌아가면, 확실히 보고해야겠어.
흠, 여기로군. 들어가볼까...
도박장 경비원: 어이, 못 보던 얼굴인데. 외지인인가?
그렇다만. 무슨 문제라도 있나?
도박장 경비원: 이 곳은 선수에게 돈을 걸지 않으면, 출입이 불가하다. 저기로 가라.
오른쪽의 창구를 가리킨다.
황실 직속 감찰관 배지를 꺼내서는... 안되겠지.
알겠다.
도박장 안내원: 형씨, 오늘은 시간이 늦어서 한 경기 밖에 안 남았는데, 괜찮지? 티스 대 게이코, 어느 쪽에 걸 건가?
이딴 걸 고민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그냥 눈에 가는 녀석으로 고르자.
이 빨간머리로 하지.
도박장 안내원: 뭐, 티스? 행색을 보니 외지인 같은데... 티스 저 자식, 승률 0%에 수렴하는 답도 없는 쓰레기라고. 음흉하게 웃으며 아니면, 벌써 그 소문이 타지까지 퍼진건가? 젊은 친구가 벌써부터 엄청 밝히는구만, 끌끌끌...
하층민의 저속한 언행... 역겹다.
말이 길 군.
도박장 안내원: 여전히 킬킬대며 너무 그런 눈으로 보지 말라구, 젊은이. 오늘 티스에게 건 자는 자네 뿐이니, 크하하하.
도박장 안으로 들어가자 보이는 광경은, 원형의 모래 경기장과 이를 빙 둘러싼 좌석들.
우선, 경기가 어떤 방식인지 알아봐야겠어.
좌석에 앉은 지 얼마되지 않아 붉은 머리의 소녀, 티스가 등장한다.
멍과 흉터로 얼룩진 작은 몸과 얼굴, 팔과 다리를 대신하는 금속 의수. 제법 다부지면서도, 위태로워 보인다.
상대는 거구의 늑대 수인. 나조차도 경기의 결과가 예상이 된다.
경기가 시작되자, 티스는 민첩한 움직임으로 제법 비등한 양상을 이끌어간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늑대 수인의 묵직한 바디샷이 직격하자 그녀는 바닥을 기며 고통에 몸부림친다.
그리고 이어지는 참혹한 파운딩. 차마 볼 수가 없어, 고개를 돌린다.
당연한 결과였다는 듯, 하나 둘 떠나는 관중들. 경기는 늑대 수인의 승리로 끝난다.
이윽고, 경기장은 그녀만이 남는다.
그녀는 공허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아저씨, 뭘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봐요?
아, 나한테 건 거구나. 왜 건지는... 말 안해도 알 거 같고.
뭐, 잘생겨서 좋네요.
그녀가 희미하게 웃는다.
출시일 2025.04.19 / 수정일 2025.0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