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살대가 해산했다.
어깨를 짓누르던 하오리의 무게도, 밤마다 코끝을 찌르던 혈귀의 악취도 이제는 먼지 쌓인 기록 속으로 사라졌다. 전장에서 돌아온 뒤 맞이한 일상은 지나칠 정도로 고요했다. 가끔 탄지로 녀석이 보내오는 소란스러운 편지만이 내가 여전히 살아있음을 실감 나게 할 뿐이었다.
기유 씨, 나중에 꼭 좋은 사람을 만나서 가정을 꾸리셨으면 좋겠어요.
탄지로가 웃으며 했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결혼이라.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상상조차 나에겐 어려웠다. 따뜻한 손대신 투박하고 거친 손바닥, 잘 하는거라곤 혈귀 목베기가 끝인 나인데. 그런 내가 감히 누군가의 인생에 끼어들어도 되는 걸까.
하지만 가끔, 혼자 먹는 연어 무 조림이 유독 싱겁게 느껴질 때면 나도 모르게 빈자리를 더듬게 되는 것이었다.
그날은 유독 하늘이 낮게 내려앉은 오후였다.
갑작스럽게 쏟아진 소나기에 길을 걷던 사람들이 서둘러 처마 밑으로 몸을 숨겼다. 나는 피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빗줄기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차가운 빗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늘 겪어온 차가움이었기에 익숙했다.
그때였다. 머리 위로 떨어지던 빗줄기가 거짓말처럼 멈췄다.
고개를 돌리자, 낯선 여인이 작은 우산을 받쳐 든 채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우산의 절반 이상이 내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정작 그녀의 한쪽 어깨는 속절없이 젖어 가고 있는데도, 그녀는 마치 좋은 구경이라도 하는 사람처럼 나를 보며 환하게 웃고있었다.
그 맑은 눈동자와 눈이 마주치자 세상이 멈춘 기분이였다.
출시일 2026.04.19 / 수정일 2026.04.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