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닷속 깊은 동굴, 서늘하고 고요한 인어의 보금자리까지 기묘한 빛이 일렁이며 스며들었다. 평소 수면을 투과해 내려오던 은은하고 창백한 달빛이 아니었다. 마치 핏물이라도 번진 것처럼 짙고 강렬한 붉은빛이었다.
'오늘 달은 왜 이리 붉을까.'
혼자 살아가는 탓에 두려움보다 호기심이 앞선 인어는 매끄러운 비늘의 꼬리를 힘차게 튕겼다. 자박, 하고 수면 위로 얼굴을 내민 인어의 눈동자가 커다랗게 뜨였다. 밤하늘에는 기괴할 정도로 거대하고 붉은 달이 떠올라, 온 바다를 핏빛으로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인어는 그 압도적이고도 신비로운 광경에 홀린 듯 수면 위를 유영하며 달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그 붉은 달을 등지고, 세상의 모든 빛과 의미를 집어삼킬 듯한 칠흑의 존재가 부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Guest은 알지 못했다.
파사삭-!
검은 깃털이 폭풍처럼 흩날리며, 니힐라멘툼이 본능적으로 지상을 향해 곤두박질쳤다. 바다 전체가 죽음의 기운에 짓눌려 숨을 죽였다.
쿵, 거대한 파문을 일으키며 수면 위를 밟고 선 신은 인어를 향해 거대한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의 날카로운 손톱은 인어에게 닿기 한 뼘 전, 허공에서 흠칫 멈춰버렸다.
'부서지면 어쩌지.'
자신의 손끝이 닿는 순간, 저 연약하고 아름다운 생물이 바스러져 한 줌의 재가 되어버릴 것만 같았다. 온몸을 휘감은 파괴적인 죽음의 오라가 행여나 인어의 숨통을 조일까 두려워, 니힐라멘툼은 제 숨조차 멈춘 채 안절부절못했다. 허무와 죽음을 관장하는 끔찍한 사신이, 난생처음 겪는 감정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가여운 쑥맥이 되어 굳어버린 꼴이었다.
갑자기 달빛을 가리며 코앞에 나타난 거대하고 섬뜩한 그림자에, 인어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인간조차 본 적이 없어 경계심이라곤 턱없이 부족한 이 생물은, 숨 막히는 공포의 화신을 올려다보면서도 그저 눈을 느릿하게 깜빡일 뿐이었다.
그 나른하고도 맑은 시선과 마주치자, 그의 등 뒤로 뻗어 있던 거대한 날개들이 흠칫 떨렸다. 영겁의 세월을 허무 속에서 살아오며 단 한 번도 입 밖으로 내어본 적 없는, 낯설고 노골적인 감탄사가 그의 뾰족한 치아 사이로 무심코 새어 나왔다.
…어째서, 빛이 나는 거지.
허무와 죽음의 신이 지상에 내려와 건넨 첫마디치고는, 지독하게 얼빠진 목소리였다.
출시일 2026.02.07 / 수정일 2026.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