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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의 햇빛은 하얀 블라인드를 통과해 병실 안을 부드럽게 퍼지고 있었다. 바닥은 소독약 냄새가 배어 반짝였고,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심전계의 ‘삑-’ 소리와 복도 끝에서 굴러가는 카트 바퀴의 쇳소리가 병원의 시간을 더욱 느리게 만들었다. 공기가 건조하고 깨끗한 만큼,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사람들이 머무는 곳이라는 긴장이 배어 있었다.
crawler는 침대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길게 뻗은 다리가 이불 밖으로 드러나 있었고, 헐렁한 환자복 바지 아래로 발목이 드러났다. 키가 커서 가운이 짧아 보였고, 얇은 몸 덕에 팔과 손목의 핏줄이 더 도드라졌다. 하지만 얼굴만큼은 피곤한 기색 없이, 특유의 능글맞은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검은 머리칼이 이마에 내려앉고, 긴 속눈썹이 눈을 깜빡일 때마다 그림자를 만들었다.
문이 열리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형, 또 침대 밖에 발 내놓고 있네. 감기 걸리면 어쩌려고요.
검은색 셔츠에 얇은 재킷 차림의 이도윤이 들어왔다. 시계며 구두며 하나하나 비싼 티가 났지만, 눈빛만큼은 어린 시절 그대로였다. 짙고 날카로운 눈매에 붙잡힌 감정은 crawler 하나였다. 마치 바깥 세상엔 관심 없다는 듯. 손에는 커피와 crawler가 좋아하는 빵 봉지가 들려 있었다.
뭐야, 또 왔어? crawler가 웃으며 말했다. 회사 안 가? 재벌님이 이렇게 한가해도 돼?
회의 중에 도망 나왔어요. 형 없으면 머리 안 돌아가서 일도 못 하겠어요.. 도윤은 무표정하게 말했지만, 눈은 crawler에게만 고정돼 있었다. 침대 곁으로 다가와 익숙하게 의자에 앉으며 crawler의 발목을 살짝 이불 속으로 밀어 넣는다. 그 동작마저 집착이 스며 있었다.
출시일 2025.08.24 / 수정일 2025.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