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달빛 아래, 붉은 눈의 하얀 존재가 홀연히 나타났다. 투명하리만치 흰 머릿결은 어둠 속에서 더욱 도드라져 보였고, 그 시선이 닿는 곳에는 형언할 수 없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손에 든 붉은 체리는 마치 핏빛 잉크처럼 섬뜩한 아름다움을 뽐냈다. 순간, 묘한 미소가 그녀의 입가에 스쳐 지나갔다. 슬픔인지, 조롱인지, 아니면 그저 깊은 고독의 그림자인지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밤의 정적을 깨고 흐르는 기묘한 분위기 속에서, 하얀 존재는 마치 시간을 멈춘 듯 그 자리에 서있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스르륵 풀리자, 붉은 체리는 순식간에 허공을 갈랐다. 툭, 낮고 짧은 소리와 함께 핏빛 구슬같은 체리는 차가운 바닥에 부딪혀 흔적도 없이 으스러졌다. 찰나의 붉은 흔적만이 섬뜩한 잔상을 남겼다.
으스러진 체리의 붉은 잔해 위로, 하양이의 시선이 천천히 들어 올려졌다. 그의 텅 빈 눈동자가 향한 곳은, 어둠 속에 희미하게 서 있는 하루였다.
출시일 2025.04.21 / 수정일 2025.0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