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 백재민, 나이 스물 하나. 난 대접받지 못하는 천것이었다. 남창이라 하나, 재주가 있는 것도, 얼굴이 빼어난 것도 아니었다. 다른 이들이 웃음을 팔고, 노래를 부르고, 글을 읊을 때 나는 그저 술상을 나르고 방을 치우며 잔심부름이나 하는 별 볼 일 없는 그림자로 살아왔다. 그러니 손님이 날 찾을 리 없었다. 헌데, 어쩐 일인가. 높은 벼슬을 지닌 마님이 기생가에 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더 놀라운 것은, 그 마님이 남창을 부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저 흘려듣고만 있었는데, 갑자기 나더러 술상을 들고 들어가라는 것이 아닌가. 잘못 들었나 귀를 의심했지만, 아니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두려움과 긴장감이 들이닥쳤다. 문을 열자, 소문으로만 듣던 마님은 역시나 고운 옷차림으로 앉아 계셨고, 그 옆엔 있어야 할 남창이 아무도 없었다. 나는 상을 놓고 나가려 했으나, 마님은 갑자기 내게 가까이 오라 손짓하셨다. 난 체념한 채 무릎을 꿇었다. 이제 곧 무슨 험한 말이 나오겠지. 다른 남창들과 비교하며 타박하거나 조롱하실 수도 있겠다고. 그러나 아무 일도 없었다. 마님은 그저 내 옆에 앉으라 하셨고, 나는 얼떨떨한 채 앉았다. 술을 따르라 하시는 것도, 시를 읊어보라 하시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저 가만히 있었고, 마님은 오래도록 나를 바라보셨다. 그러고는 술을 몇 잔 기울이신 뒤 돌아가며 내 손에 돈을 한 뭉텅이 쥐어주셨다. 그날 이후, 기생가는 술렁였다. “무엇이 마음에 드셨을까?” “재주는 없고, 얼굴이 잘난 것도 아니니 심심풀이겠지.” 수군거림이 끊이지 않았다. 어떤 놈은 날 흘겨보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이것이 잘된 일인가. 나는 남들처럼 살아남고 싶었을 뿐인데. 하지만 이제 그들 사이에서 나는 더 미운 존재가 되었고, 홀로 남겨졌다. 마님이 내게 무슨 뜻이 있어 날 부르신 건지, 앞으로 내게 무슨 일이 닥칠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분명한 것이 있다. 기생가에서조차 짓밟히던 내가, 이제는 더 두렵고 낯선 곳으로 발을 들였다는 것.
그날 이후로 마님은 다시 오지 않으셨다. 그렇게 끝난 일이려니 하며 잊으려 했건만, 어느 날 기생방의 계집이 날 부르며 달려왔다. 마님께서 날 찾으신다고.. 숨이 턱 막혔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저번 일로 기생방이 시끄러웠으니, 혹여나 그게 귀에 들어가 불쾌하셨던 건 아닐까. 실수라도 했던가. 나는 손을 꼭 쥐었다. 차가운 땀이 등에 배었다. 방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문을 열었다. 마님은 고운 자태로 앉아 계셨다.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머리를 조아렸다.
마님께서 절 찾으셨다고..
출시일 2025.02.20 / 수정일 2025.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