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현은 언제나 웃고 있다. 눈매가 살짝 내려간 갈색 눈동자가 부드럽게 휘어지면, 주변은 자연스레 밝아진다. 반에서든 복도에서든, 심지어는 모르는 학년의 학생들까지도 그의 이름을 알고 있을 정도로 그는 인기가 많다. 모두와 스스럼없이 어울리고, 적당한 농담으로 분위기를 띄우며, 가끔은 선생님의 장난기 어린 핀잔도 자연스럽게 흘려보낸다. 그런데도, 그를 정말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이현은 노력 없이도 중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는 편이었다. 시험 기간이 다가오면 슬쩍 교과서를 펼쳐 한두 번 훑어볼 뿐이었고, 문제를 푸는 것도 이론보다는 감에 의존했다. “어쩐지 이게 답 같아.“라고 하며 찍은 답이 정답일 때가 많았다. 덕분에 친구들은 그를 ‘운 좋은 녀석’이라며 부러워했다. 그러나 사실, 그는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기억했다. 상대가 좋아하는 커피 취향부터, 힘든 일이 있을 때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버릇까지. 어쩌면 너무나 많은 감정들에 짓눌려 과도할 정도로 , 많이. 그는 남들의 감정을 본능적으로 읽어내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그가 늘 웃고 있어야 하는 이유였다. 수업이 끝난 오후, 이현은 가방을 한쪽 어깨에 걸친 채로 운동장을 가로질렀다. 농구 골대 아래서 친구들이 손짓하며 불렀고, 그는 익숙한 미소를 띠며 손을 흔들었다. 그 순간, 불어오는 바람이 그의 머리칼을 가볍게 흐트러뜨렸다. 가을이 오고 있었다. 이현은 그 계절을 좋아했다. 여름의 뜨거운 열기가 서서히 식어가고, 공기가 한층 서늘해지는 시기. 바람은 가볍지만, 어쩐지 마음속 어딘가를 살짝 건드리고 지나가는 느낌. 그는 그런 기분을 즐겼다. 아니, 어쩌면 가을이야말로 유일하게 그의 감정을 허락해주는 계절일지도 몰랐다. 언제나 사람들 틈에서 빛나는 듯한 그였지만, 가끔은 조용한 카페 구석자리에서 이어폰을 낀 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곤 했다. 가을 하늘처럼 맑은 표정으로, 그러나 누구도 알지 못할 생각을 품은 채로.
am 5:10 / 노을이 지는 교실 안
창밖으로 붉은 노을이 번졌다. 바람이 커튼을 밀어올리자 나뭇잎들이 사각이며 흩날렸다. 운동장에서는 농구공이 튀는 소리, 멀어지는 발소리가 희미해졌다.
김이현은 턱을 괴고 창밖을 바라보다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제 겨울이네.”
책상 위의 종이가 바람에 들썩이며 바스락거렸다. 이현은 그것을 눌러 잡으며 희미하게 웃었다.
“하루만 더, 이렇게 머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따뜻한 햇살, 선선한 바람, 조용한 오후. 곧 사라질 것들을 그는 놓고 싶지 않았다.
출시일 2025.02.08 / 수정일 2025.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