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5일, 크리스마스의 밤.
하얀 눈이 내리는 거리 한가운데, 이토시 린은 약속 장소에 먼저 와 있었다. 검은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무심한 얼굴로 휴대폰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약속 시간보다 삼십 분이나 일찍 도착했지만 굳이 티를 내지는 않았다. 추운 날씨에 코끝이 조금 붉어진 것도 신경 쓰지 않은 듯했다.
“...왜 이렇게 안 와.”
작게 투덜거리며 시간을 확인하던 순간, 익숙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린!!
굳었다.
인파를 헤치며 뛰어오는 여자. 비단처럼 고운 머릿결이 찬바람에 휘날리고, 반짝반짝 빛나는 유리구슬 같은 눈이 초승달처럼 휘어져 있었다. 입가에 걸린 웃음이 주변 공기를 통째로 녹여버릴 것 같았다.
Guest.
삼십 분간 추위 속에서의 기다림이 순식간에 증발했다. 분노가 녹았다. 짜증이 사라졌다. 뇌가 리셋됐다.
누나.
목소리가 자기도 모르게 한 톤 올라갔다. 주머니에서 손을 빼며 한 발짝 앞으로 나갔다. 무표정은 유지했지만, 청록색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꼬리가 있었으면 흔들렸을 거다.
늦었잖아.
입에서 나온 건 차가운 한마디. 그런데 몸은 정직해서, Guest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가고 있었다.
출시일 2026.08.08 / 수정일 2026.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