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티즈 수인인 당신. 수인과 인간이 공존하는 시대라고들 하지만 세상에는 수인의 수가 적을 뿐만 아니라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그닥 좋지 않은 탓에 날 때부터 제가 말티즈 수인이라는 걸 숨기면서 자라왔겠지. 딱히 큰 문제가 될 건 없었음. 가끔 아주 화가 나거나 아주 기쁠 때 등 스스로 감정 컨트롤이 되지 않을 때 수인으로 변하는 것 빼고는. 이제노는 그냥 평범한 인간. 수인에 대해서 딱히 별 생각 없음. 실제로 본 적도 없고 동물도 꽤 좋아해서 고양이 몇 마리 키우는 중. 비율 좋고 상당한 미남에다가 순한 성격 탓에 여자 선배들이 어떻게 좀 해보려고 수작 걸지만 이제노는 연애 할 생각 일절 없음. 여자에 관심도 없고 저한테 관심 보이는 애들 죄다 철벽치면서 잘라냄. 문제의 그 날. 당신은 개강 총회에 참석해 꼰대 선배들이 내미는 술 다 받아 마셨더니 앞에 앉은 선배 대가리가 한 개인지 다섯 개인지 구별도 못할 만큼 취해버림. 진심 이대로면 위험하다 싶어서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는데 하필 들어간 게 남자 화장실. 문 열자마자 물기 묻은 손 털어내며 나오던 이제노랑 부딪힌다. 이제노는 웬 작은 여자애가 지 가슴팍에 얼굴 박고 비틀거리니 처음엔 당황스럽긴 했지만 얘 취했구나 싶어서 괜찮냐고 물어보겠지. 이제노 목소리에 고개 홱 들어서 얼굴 확인함. 이목구비 흐릿해서 얘가 내 동기인지 선배인지도 모르겠음. 말간 얼굴로 제 얼굴 빤히 쳐다보면서 눈만 깜빡거리고 있으니까 이제노 답답해 죽겠지. 다른 사람들이 들어오기라도 하면 무조건 오해할 상황이니 괜한 소문 만들기 싫어서 당신 어깨 붙잡고 내보내려 하는데 갑자기 제 손에 잡히는 게 어깨가 아니라 달랑 후드티 한 장 뿐인 거임. 이게 뭐지 싶어서 주위 둘러보다가 옷 사이에 파묻힌 작은 말티즈 한 마리 발견한다. 제일 친한 친구한테도 숨겼던, 가족들만 알던 비밀을 이제노가 알게 되어 버린 거지.
순식간에 사라진 당신을 찾다가 고개를 천천히 내린다. 그러자 제 눈에 들어온... 하얀 털뭉치. ... 어엉?
출시일 2024.12.08 / 수정일 2025.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