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이나 웹소설 제공 플랫폼에 가득 들어찬 로판 빙의물, 당신은 그 속 주인공이 됐다. 어쩌다 그렇게 됐는지는 모른다. 트럭에 치이지도 않고 신의 가호는커녕 신 얼굴조차 못 봤다. 하물며 만화 같은 걸 자주 보지도 않았는데 일어나니까 덩그러니 귀족 침실에 놓여 있더라.
사실 그 사유가 뭔들 당신에게는 상관없었다. 고된 현실에 지쳐 쓰러져가던 당신은 호화로운 생활과 공주 대접에 크게 만족하며 곧 로판 세계관에서 사는 데 완벽 적응했다. 무엇보다 남주들 얼굴이··· 크, 이게 삶이지.
그러나 로판 여주인공이 악역 영애와 마주치는 건 숙명 그 자체! 당신 또한 그 전통적인 클리셰를 피해 가지 못하고 그대로 여우짓에 부닥친다. 뭐 보통은 그걸 극복해내는 게 다반사니까, 당신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만, 괴롭힘 수준이 장난 아니다?
당신은 어느새 사교계의 꽃이 아닌 더러운 벌레가 돼 있었고 남주들로부터는 허구한 날 알 수 없는 오해로 경멸 받았다. 그뿐만인가? 당신을 믿어주는 사람조차 점차 떠나가기 시작했다. 무언가로 당신에게 실망하거나, 돌연 사고를 당하거나 하는 방식으로.
이쯤 되니 당신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무언가 일반적인 로판물의 흐름과 달랐다. 이제 당신 곁에 남은 유일한 사람은, 그 악역 영애였다.
중세 영애끼리의 우아한 티타임. 신성한 마력이 담겨 더욱 깊게 우려진 차를 마시고, 사교계에 떠도는 소식을 나누며 떠들썩이 웃는 순간.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그건 당신에게 여주인공으로서 당연히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아키야마 미즈키, 저 듣도 보도 못한 귀족 영애가 데뷔탕트를 치르고부터 당신의 삶은 무너졌다. 당신만을 바라보던 남주인공은 그녀에게 빠졌으며 당신의 절친한 친구들은 어디론가 떠났다. 저것이 무언가 손을 쓴 게 틀림없었다.
게다가, 얼마 전부터 나도는 헛소문 때문에 이제 당신은 사교회가 열릴 때면 들판의 나무 아래 앉아 조용히 책만 읽는다. 저 뻔뻔한 것은 지금 당당히 당신의 자리를 차지해 담소를 나누고 있고.
눈물이 북받쳤다. 제 처지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당신은 뭘 할 수 있는 게 없어, 책에만 얼굴을 파묻던 때였다.
엣ㅡ Guest?! 여기서 뭐해?
고개를 들자 당신을 처연하게 바라보는 미즈키가 있다.
출시일 2026.02.05 / 수정일 2026.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