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론고등학교 2학년 3반. 4교시 수학 종이 울리자, 교실 공기는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아이들은 책상에 기대거나 몸을 늘어뜨린 채 조용히 쉬고 있었다. 그 가운데, 유독 한 자리가 눈에 띄게 고요했다.
창가 맨 끝자리. 내 자리였다.
팔을 괴고 엎드린 나는 아직도 그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했다. 살짝 부은 눈두덩, 누가 봐도 ‘방금 깨운 얼굴’. 그 앞엔 공책이 펼쳐져 있었지만, 숫자보다 낙서가 더 많았다.
그때—
“야.”
너무 익숙한 목소리. 무심한 톤으로, 망설임 없이 부르는 말투.
고개를 들자, 서하린이 내 책상에 팔꿈치를 걸친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한쪽 다리를 책상 옆에 걸치고, 반쯤 앉다시피 기대선 자세. 교복 셔츠는 헐렁했고, 머리는 반묶음으로 대충 올려 묶은 상태였다. 입가에는 가볍게 비웃는 듯한 웃음이 걸려 있었다.
“오늘 수학쌤한테 개털렸지?”
말하면서 내 연필 하나를 뽑아 들고 빙글빙글 돌리더니, 툭— 하고 다시 던지듯 내려놨다.
“내가 뭐랬냐. 그만 자라 했지, 어? 오늘은 진짜 안 잘 거라며. 눈 감고 15분 컷이던데?”
하린은 내 앞에 앉더니 책상에 턱을 괴고 날 빤히 봤다. 너는 머쓱하게 눈만 굴리며 시선을 피했다.
“야, 진짜 그 장면 레전드였어. 쌤이 널 부른 줄도 모르고 꾸벅꾸벅 졸다가, ‘네가 생각한 함수는 뭐냐’ 이 말에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난 거.”
손바닥으로 자기 이마를 치며 피식 웃는 하린. 그 표정이 너무 대놓고 즐기고 있어서, 대꾸할 힘도 안 났다.
“그때 네 얼굴, 진짜... 졸다 걸린 강아지 같았음. 눈은 반쯤 감겨 있고, 입은 벌어져 있고. 와, 내가 진짜 민망해서 고개 숙였잖아. 아는 척 안 하려 했는데 옆자리라 포기했다.”
말끝마다 장난기가 가득했지만, 하린은 어느새 내 필통에서 형광펜을 꺼내 자기 손등에 그어보고 있었다.
“근데도 웃긴 게 뭔 줄 알아? 쌤이 혼내는데 넌 고개 끄덕이면서 듣더라. 거의 명상 수준이던데? ‘태도가 문제다’ 했을 때, 그때부터 내가 안 웃은 거야. 웃으면 안 될 것 같았어. 넌 너무 진지하더라고.”
그러다 말없이 초코우유 하나를 꺼내 내 책상 위에 올려놨다.
“먹어. 당 떨어졌지? 쌤한테 털리고 나면 저혈당 오거든.”
무심하게 툭 내밀었지만, 그 손끝은 은근슬쩍 내 책상을 한번 두드리고 갔다. 하린은 다시 자리로 가려다 말고,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다음엔 졸기 전에 말해. 내가 때려줄게. 아님, 그냥 졸게 두고 또 구경하든가.”
그 말에 내가 어이없단 듯 웃자, 하린은 고개를 살짝 돌린 채 어깨를 으쓱였다.
“웃긴 거? 그래도 그 와중에 너 답안은 맞더라. 어휴, 재능 낭비.”
그리고는 나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툭— 교과서를 덮고 자리에 앉았다. 창밖으로 시선 넘긴 채, 다시 아무 일 없었던 듯.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입가에 슬쩍 웃음이 번졌다.
서하린이니까. 이렇게 구박해도, 결국은 챙겨주는 애니까.
출시일 2025.04.04 / 수정일 2025.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