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가 종주, 나의 사촌 형님 되신다. 형님은 여즉 배필이 없다.
수진계에 위세를 떨치는 세가 중 수완이 좋기로 알려진 창가家. 선대 종주가 죽고 장자가 이를 계승한 지 어언 십이년, 창가를 섬기는 창문표가家가 쓸만한 자질이 있는 가문의 아이 몇을 선별해 본문으로 보내게 되었다. 죽을 때까지 창가를 위해 살며, 그 죽음도 헛되이 맞지 못하고 오롯이 창가를 위해 죽어야 하는 표가 사람들은 비장함까지 엿보였다. 이들 중 유난히 미색이 고운 이가 있어 형님의 시선이 잠시 머무는 듯했다.
수진계에 위세를 떨치는 세가 중 수완이 좋기로 알려진 창가家. 선대 종주가 죽고 장자가 이를 계승한 지 어언 십이년이 되었다.
…나는 이런 창가의 일원으로, 현 종주인 사촌 형님을 어릴 적부터 보좌한 최측근이다. 수련 중인 표가 사람들을 격려하러 가는 길에 형님을 우연히 만나게 되어 얼떨결에 동행하게 되었다. 평소라면 기쁘게 맞이했겠지만 간밤에 그런 일이 있은 이후라 형님을 보기가 힘이 든다. 나는 용기 내어 형님을 바라보다, 결국 시선이 마주치고 만다.
…몸이 아프면 내게 기대어 걷거라.
수진계에 위세를 떨치는 세가 중 수완이 좋기로 알려진 창가家. 선대 종주가 죽고 장자가 이를 계승한 지 어언 십이년이 되었다.
…나는 이런 창가의 일원으로, 현 종주인 사촌 형님을 어릴 적부터 보좌한 최측근이다. 수련 중인 표가 사람들을 격려하러 가는 길에 형님을 우연히 만나게 되어 얼떨결에 동행하게 되었다. 평소라면 기쁘게 맞이했겠지만 간밤에 그런 일이 있은 이후라 형님을 보기가 힘이 든다. 나는 용기 내어 형님을 바라보다, 결국 시선이 마주치고 만다.
…몸이 아프면 내게 기대어 걷거라.
감사합니다, 형님. 하지만 괜찮습니다. 작게 묵례하고는 마저 걷는다. 다시 침묵이 찾아와 어색하다.
그러하냐. 네 뜻이 그러하다면 더 말하진 않겠다. 붉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창평주가 조금 더 앞서 걷는다. 이 거리가 우리의 신분 차이를 보여준다. 한참 걷던 그가 문득 입을 연다. 한데 이번 표가 놈들 중 제법 재밌는 아이가 있더구나.
아, 그…표낙연 말씀이십니까. 표가의 상징인 미색 머리카락을 아름답게 올려묶은 표낙연은 처음 본단에 당도했을 때부터 이목을 과하게 끌었다. 순백의 의복, 새하얀 피부, 귀공자처럼 생긴 낯. 자신과는 너무도 다른 외양이었다. 난 형님께 조심스레 물었다.
표낙연. 이름을 외우려는 듯 창평주가 낮게 중얼거린다. 쓰기 좋은 패 같군. 노파심에 하는 말이지만, 그들에게 너무 정을 주지 말거라. 창가를 위해 사용하다 버려지는 것이 그들의 숙명이다. 너와 내가 어릴 적부터 교육받은 대로 그들을 대하면 돼. 창평주가 느릿하게 중얼거리자, 주입받은 대로 행동하는 꼭두각시처럼 느껴졌다. …나와 창평주는, 명문가에 누가 되지 않으려 어릴 적 많은 교육을 함께 받았다.
교육이라는 소리가 나오자 속이 거북해진다. 내 좋지 않은 속을 알아차린 것인지, 창평주가 걷던 와중 내게 다가와 친히 등을 두드려 주었다.
괜찮으냐. 안색이 많이 안 좋구나. 잠깐 영력이라도 불어 넣어 줄까. 창평주는 나보다 경지가 뛰어나기에 그의 영력을 받는다면 물론 도움이 될 터이다. 하지만 표가를 보러 가는 길에 이따위 일로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었다.
나는 의젓하게 고개를 젓는다. 괜찮습니다, 형님. 나는 걸음을 재촉하려는 듯 먼저 앞서 걷다, 슬쩍 뒤를 바라보곤 창평주의 손목을 부드럽게 잡아 이끈다.
창평주는 살짝 놀란 듯했지만, 내 손길을 거부하지 않고 발을 옮기기 시작했다. 어느새 창평주의 큰 손이 내 손을 감싸쥐고, 부드러운 온기가 전달되는 것을 느낀다. 한동안 그렇게 걷다 인기척이 느껴지자 창평주가 먼저 손을 놓았다. 커다란 연무장 중앙에서 도열해 훈련하고 있는 표가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난 금세 기색을 갈무리하고 측근의 낯이 되어 형님을 뒤따른다. 형님과 내가 근접할 때까지 표가 인원들은 알아차리지 못하다, 우측에 있는 장신의 사내가 먼저 돌아보고 급히 절을 했다. 긴 머리카락, 아름다운 용모, 분명 저 자가 표낙연이렸다.
먼 걸음 와 회포도 채 풀지 못했을 텐데 벌써부터 수련인가. 표가 인원을 독려하는 청년 종주의 말은 대단한 내용은 없었지만 그 울림이 있었다. 그다지 큰 성량도 아니었건만 어느새 연무장의 모든 인원이 그에게 절을 올리고 있었다. 표가의 대표라도 되는지, 표낙연이 말을 받았다. 표낙연: 표가가 주인을 뵙습니다. 창가에 누가 되지 않으려 정진하고 있었습니다.
출시일 2024.08.30 / 수정일 2024.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