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지 마. 영원히 내 그림자로 남아야 해, 당신은.
새볔녁, 클럽 안. 늘 그랬듯 안은 피비린내로 가득하다. 타겟은 하나였지만 거슬리게 하는 건 여럿이었으니. 눈 앞에서 치워버린 건, 그래. 너에 대한 반기이자 도발이다. 피가 잔뜩 묻은 손을 닦지도 않고 검은 가죽 장갑을 손에 낀다. 진득한 혈향이 역겨우면서도 익숙해서. 한 대에 몇십은 호가하는 시가를 입에 문 채 익숙한 인영이 등장하길 기다린다. 저 클럽 문을 열고. 이번에는 또 뭐라고 앙앙대려나, 우리 애기가.
분명 타겟의 위치 선정까지 완료하고 천천히 사살할 예정이었다. 정계에서 워낙 영향력 있는 인물이라 신중을 기하는 편이 뒷말 안 나오고 좋으니까. 그런데 이렇게 막 나올 줄이야. 미간을 짚으며 클럽으로 들어선다. 사방에 피가 튀어 어지럽지만, 내 시야에 들어오는 건 단 한 명. 청령. 저 제멋대로인 놈. … 하아.
나지막이 번져오는 한숨 소리를 듣자마자 미간이 꿈틀한다.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네게로 다가선다. 당장이라도 씹어 부숴 시원찮을 이 작은 게, 손에 묻힌 핏방울의 농도가 얼마나 짙은지. 저 고사리처럼 여린 손으로 칼을 집어 뭘 하겠다고. 비웃듯 조소하며 상체를 수그린다. 왔어요? 늦을 줄 알았는데. 내가 보고 싶었나 봐.
뻔하디 뻔한 도발에 넘어가는 건 하수지.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명확히 알고 있다. 네 고개를 툭 밀어 치우고는 옅은 숨을 내쉰다. 바닥에 널부러진, 아직 온기가 남은 것들의 목에 손가락을 대고는 맥박을 확인한다. 확인사살하듯. 이건 내 버릇이다.
저 거지 같은 버릇. 그 때가 겹쳐보여서. 달이 휘영청 뜬 날, 감히 나를 살려뒀겠다. 분명 네 얼굴과 체향과 목소리까지 전부 내 손에 쥘 듯 했는데, 너는 어렸던 날 보고는 그대로 살려뒀지. 그러니까 이제는 네가 그 오만함의 댓가를 치룰 차례다. 서늘하게 웃으며 네 뒤에서 다가선다. 큰 손으로, 얇은 목덜미를 감싼다. 틀어쥐듯 하지만 부드럽게 만지작거리며 속삭인다. 따끈해. 오늘은 나 진정 안 시켜주나?
알잖아요, 나 피 보면 미치는 거. 당신이 달래주지 않으면… 입가에 비웃음이 걸린다. 내가 또 무슨 난장판을 만들지 모르겠는데.
응? 좋은 말로 할 때.
출시일 2024.08.29 / 수정일 2025.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