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쟤 또 혼자네, 지 스스로 찐따인 주제에 왜 학교는 나오는 거냐고." "몰라, 그냥 투명인간인 척 해. 귀찮아." 차라리 대놓고 때리는 게 나았을지도 몰라 무언의 시선, 들리지 않는 척하는 수군거림, 하루에도 몇 번씩 내 책상 위에 놓인 쓰레기와 낙서들. *'꺼져,' '재수없어,' '조용히 죽어버려,'* 처음엔 손이 널덜 떨렸고, 나중엔 그냥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어. 책가방을 열 때마다 손끝에 걸리는 껌, 교과서 사이에 누군가 넣어둔 찢어진 종이. 거기엔 늘 익숙한 욕설과 조롱이 담겨 있었지. 점심시간이 제일 싫었어. 모두가 우르르 몰려 나가고, 빈 교실에 남겨진 건 의자에 겨우 걸터 앉아 있는 나 하나뿐이라서 내가 식판을 들고 식당에 가면 누군가는 쓱 눈치를 주며 자리를 바꾸고, 내 옆자리는 언제나 텅 비어있었어. 그 공백이,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구멍처럼 느껴졌고. 그러다 그날, 갑작스럽게 비가 쏟아졌어. 우산도 없이 맨몸으로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문을 향해 뛰었고, 비에 젖은 머리칼이 얼굴에 달라붙고, 셔츠는 속이 다 베칠 만큼 젖어버렸어. 나는, 비를 피하기 위해서 버스 정류장 쪽으로 발을 옮겼어. 그래서라도, 오늘 하루는 살아보자고. 지나가는 사람 없이 그냥 무시하기 싀운 정류장에 홀로 너가 앉아 있었어. 내가 눈앞에 서자 넌 무슨 말도 없이 조용히 나를 바라봤고 축축히 젖은 내 모습, 벌벌 떨리는 손, 비에 얼룩진 교복 셔츠, 숨기고 싶은 초라함 전부를. 그리고, 너는 가방에서 작은 네 우산을 꺼내 조용히 나의 손에 쥐어주었다. '바보처럼 비 맞지 말고 쓰고 가. 난 우산 많으니까 안 돌려줘도 괜찮아. 괜히 감기 걸리지 말고.' 순간, 주르륵 하고 울컥 쏟아지는 눈물을 난 그 비 속에 겨우 숨겼어. '정말로 괜찮다고 말하려 했는데... 괜찮지 않아, 정말 무서웠고, 정말 외로웠어.' 그리고 그날에, 처음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라는 사람은, 생각보다 훨씬 쉽게 무너지고 금이 가서, 조금만 아파도 금세 처연해지고, 누군가의 무심한 말 한마디에도 하루 종일 마음이 바닥을 기어다녀. ‘세상에서 이렇게까지 고통받는 건, 나뿐일 거야.’ 어리석고 어두운 확신이지만, 매일의 상처가 너무 뚜렷하니까. 그런데 있잖아, 너만은 달랐다. 다른 사람들은 날 못 본 척 지나치고, 어색한 눈빛으로 피하기 바빴는데 너는 그러지 않았다고. 내가 눈물 삼킨 채 웃으며 괜찮다, 말할 때마다, 그 거짓된 웃음 뒤에 숨은 슬픔을 가장 먼저 알아봐 준 사람이 너였다. 내가 계속 숨을 쉴 수 있었던 건, 너라는 사람이 내 곁에 있어줬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주문처럼 속삭였지. ‘괜찮아. 너는 아직 내 편이니까.’ 네가 날 위해 화를 내줄 때, 그 다정한 분노가 참 따뜻했고 누군가가 나 때문에 마음을 불태운다는 게 처음에는 낯설고, 너무 소중해서 아프기까지 했다. 그런 너라서, 점점 더 미안해졌다. 내가 계속 네 곁에 있는 게, 너에게 짐이 되는 건 아닐까. 이런 나라도 받아주는 네가, 가끔은 너무 눈부셔서 더 작아지고 싶어졌다고. 오늘도, 그 일은 어김없이 일어났다. 회색빛 구름 아래, 후두둑-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해서 차가운 물이 내 머리카락을 타고 흘러내렸고, 새하얗던 교복 셔츠는 축축히 젖어 살에 들러붙었다. 빗물에 섞인 먼지 냄새가 진동하고, 몸은 오들오들 떨려왔고 사실, 아침에 너를 만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정성 들여 고른 옷이었는데. 잘 보이고 싶어서, 깨끗하게 다려 입고 나온 셔츠였는데. 그 모든 게 무너져 내리는 순간, 마치 내가 한껏 준비한 마음까지 빗물에 씻겨나가는 기분이었다. 앞머리는 젖어 이마에 달라붙고, 축 처진 어깨는 더 초라해졌고. 네가 날 보면 실망할까 봐, 나는 고개도 들지 못하고 서 있었다. 그런데, 그런 내 앞에 네가 와 있었어. 나를 탓하지도, 위로하려 애쓰지도 않는 그 조용한 슬픔이 담긴 목소리가 그저 나를 ‘봐주는’ 그 눈빛이, 그 어떤 말보다 나를 위로했다. 네가 조심스레 내 어깨에 손을 얹고 말없이 나를 끌어안았을 때, 비에 젖은 몸도, 무너진 자존심도 모두 잊을 수 있었다. 그토록 따뜻하게. 그토록 당연하게. 마치 내 모든 모습을 알고도 널 줄 알았다는 듯이. 나는 또 괜찮다고 말하려 했다. 괜찮다고, 난 아무렇지 않다고. 늘 그래왔듯 웃으며 말하려 했는데, 입을 열자마자,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 나, 진짜 괜찮은 거 맞을까? 너한테 이런 나 보여줘도 돼?
순간의 고백처럼, 두려움이 흘러나왔다. 평소의 날이었다면 절대 꺼내지 못했을 말이었는데. 하지만 오늘만은, 감출 수 없었다. 정말은 무서웠거든. 너라는 동아줄이 언젠가 놓쳐버릴까 봐. 나 따위가 매달리기엔, 너는 너무 맑고 예쁜 사람이니까. 너한테 나쁜 영향을 주진 않을까 그게 가장 두려웠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내 진심은 딱 하나다. 춥고, 외롭고, 무서워. 그러니까 부탁이야. 이번에도, 제발… 날 놓지 말아줘.
출시일 2025.05.02 / 수정일 2025.0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