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 같은 날, 같은 시간. 새벽 1시, 군마의 구불구불한 산길을 내달리는 새하얀 스포츠카 한대. 경찰이 나와서 단속을 하는 날엔 코뺴기도 보이지 않다가, 없는 날엔 귀신같이 나타나는 그것.
백마라고 하던가, 닛산의 하얀 실비아 S14. 매일 이 시간에 나와 헤어핀을 재빠르게 주파하고 직선주로에선 언제라도 이륙할 것만 같은 속도.
왜, 어떤 이유로 그렇게 매일 똑같은 시간에 나와서 같은 길을 3년이나 쏘다니는건지...
3만엔, 줘.
그런 소문의 주인공, 나. 타카하시 쿠미. 밀린 월세를 내기 위해 급전으로 이런저런 떨거지들의 산길 레이스에 응해주고는 하는데, 나를 숨기기 위해 차량의 번호판도 떼고 마스크도 꼭꼭 끼고 온다.
...음, 맞네. 고마워.
쉬웠다. 겉보기식으로 차를 뜯고 붙이고 하는 폭주족들을 이겨먹는 건. 알고 하는건가? 나를 위한 기부인건가도 싶지만 어찌되었든지 이것도 좋은 수입원이니까.
아, 그리고.
나는 운전석의 문을 열다 말고, 내가 이겨먹은 레이스 상대와 경주를 보러 온 관중들에게 말했다.
나, 따라오지 마, 찾지도 말고.
그 말을 끝으로, 나는 운전석에 올라타 문을 닫고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산길을 내려갔다. 트렁크의 냉동식품들이 식기 전에, 내 일을 해야지.
나는 고등학교를 나왔다. 따분한 수업, 학비는 늘어만 가고 교복은 헤져 입을 수도 없는 지경. 그래서, 난 학교를 그만두고 나이를 속여 편의점의 냉동식품 배달부로 일하기로 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첫 1년은 꽤 힘들었다. 면허도 없는 나는, 몰래 새벽에 나와 편의점 트럭을 가지고 빈 주차장에서 핸들을 돌리고 기어봉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야매로 운전을 독학하려니... 엄청 힘이 들었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나니 어느샌가 부터 이리 느려터진 트럭으로 구불구불한 군마의 길을 다니려니 화마가 치솟는게 아닌가? 그래서, 나는 쓸 곳 조차 없는 돈을 모아 중고차 하나를 샀다. 별 볼일 없는 하얀 이름 모를 자동차, 닛산의... 실비아 S14랬나, 뭐. 그 큼지막한 트럭보다 빠르기만 하다면 상관 없으니.
...가볼까.
그렇게, 나의 질주가 시작되었다.
새벽 1시, 냉동식품의 입고 시간까지 맞춰 넣어야 하는 시간. 나는 오늘도 뒷범퍼의 번호판을 떼서, 트렁크를 열었다. 커다란 두 아이스박스 아래 조용히 숨기고, 트렁크를 닫았다.
...후
오늘도, 나의 새벽밤 질주는 시작되었다.
오늘도 새벽 배송일이 끝났다. 평소처럼, 근처의 낡은 주인 없는 차고에 차를 숨겨놓고 나오니 길가에 걸어다니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
지극히, 평범한 나의 일상. 벌써 3년인가,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나이를 속여 편의점의 배달원으로 일한지. 벌써 그 당시에 속여 말했던 그 나이가 돼 버렸네. 그런데도, 바뀐게 없다.
...다녀왔습니다.
이름조차 없는 2층짜리 건물. 1층은 일본 가정식 집이고, 위층이 내 집이다. 가끔가다 사람들의 대화소리와 요리하는 듯한 지글거리는 소리와 보글보글거리는 소리도 들리지만, 너무 피곤해서 집에 돌아오면 거의 퍼질러 자곤 하나 별 신경은 가지 않는다.
...하.
옷울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두고, 빨리 자고 싶은 마음에 차가운 물로 대충 씻고 나왔다. 그래도 몸에 상처가 나는 것도 고치려면 돈이니, 바닥에 있던 나시와 반바지를 입고 바람이 반 정도 빠진 매트리스 위에 몸을 뉘었다.
...
그렇게, 나의 또 다른 하루가 지나간다.
출시일 2025.09.17 / 수정일 2025.0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