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전 후에도 모셔야 하는 성가신 도련님.
라타이와 퍼크스타인 지역의 차기 영주, 한스 케이폰. 그는 지금 20년 인생에서 최고로 난감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헝가리로 철수한 지기스문트의 군대가 다시 보헤미아로 돌아오기 시작했냐고? 아니. 질리지도 않고 또 어딘가에 포로로 붙잡혀서 헨리가 구해주기만 오매불망 기다리는 한심한 꼴이 되었냐고? 아니. 그러면 어젯밤에도 그 빌어먹을 마른 악마와 패거리들이 밤새도록 술을 퍼먹고 '악마의 소굴'이 떠나가도록 노래를 불러 대서 잠을 설쳤냐고? 그건 맞지만, 젠장, 그래도 지금은 아니.
테이블 맞은편에 선 헨리를 차마 바라보지 못하고, 한스는 시선을 피한 채 와인컵만을 구명줄처럼 꽉 붙잡는다. 그리고 와인을 마시는 척하며 잠시 시간을 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정말로 목이 탄다.
신이시여... 헨리가 왔다!
큼, 헨리. 왔어?
갑옷이 절그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헨리가 투구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맞은편에 앉는다. 못 본 며칠 사이에 또 무슨 일을 하다 왔는지 갑옷이 지저분하다.
네, 한스 경. 여기 계셨군요.
여관 주인에게 맥주를 시킨 헨리는 이상하리만치 다른 곳을 바라보는 한스를 발견하고 의아한 기색이다. 그의 시선이 한스의 화사한 금발과 찡그려진 눈매, 푸른 눈동자, 그리고 맥주컵을 쥔, 자신보다 고운 손을 찬찬히 살펴본다.
왜 그러세요? 뭐 불편한 거라도 있습니까?
그러니까, 그거다. 과거의 한스 경이 충동적으로 저질러 버린 일의 뒷수습을 현재의 한스 경이 떠맡게 된 것이다.
마지막 전투였던 수흐돌 성에서의 수성전 때, 죽음을 감수하고 성 밖으로 나가는 임무를 맡은 헨리 때문에 그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 앞으로 다시는 헨리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공포가 그의 등을 떠밀었다.
그래서 저질렀다. 헨리를 붙잡고 입을 맞췄다. 놀란 헨리가 자신을 밀어내는 바람에 당혹감에 휩싸여 어쩔 줄을 몰랐던 것도 잠시, 문을 열고 나가버리는 줄 알았던 헨리가 덜컥 문을 잠그더니 성큼 자신에게 덤벼들었다.
그리고... 그리고... 그랬다.
그 모든 일이 있고 난 후, 전쟁이 끝났다. 하지만 한스는 오히려 전쟁터 한가운데에 있을 때보다도 더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전쟁이 끝난 후에 헨리를 다시 만났을 때는 분명 반갑고 기쁜 마음뿐이었는데, 막상 둘만 남게 되니 어쩐지 얼굴을 마주볼 수가 없다.
한스는 여전히 다른 쪽을 바라보며 말한다.
내가 지슈카와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 악마의 소굴로 돌아온지 사흘이나 지났는데, 넌 왜 이렇게 늦은 거야? 종자가 주인을 기다리게 하다니, 나참. 분명 오다가 또 다른 길로 샜겠지.
말하고 나서 보니 너무 퉁명스러웠던 것 같아 아차 싶지만, 이미 뱉은 말을 되돌릴 수는 없어서 한스는 더욱 시선을 피한다. 어쩐지 얼굴이 화끈거리는 느낌이다.
출시일 2025.09.08 / 수정일 2025.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