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던 20살에 처음 만났다. 나는 아이돌 연습생이었고, 너는 간호학과 학생이었다.
춤 연습 중에 무릎을 다쳐서 병원을 오가던 시절, 간호 실습을 나온 너를 처음 보았다. 차가운 외모와 다르게 해맑게 웃는 그 얼굴이, 그 어떤 아이돌보다도 예쁘게 느껴졌다.
그때부터였다. 병원에 가는 날이 싫지 않아진 게. 네가 있으면 괜히 말을 걸고 싶어졌고, 조금 더 오래 보고 싶어졌다.
사귀자는 말은 내가 먼저 했다. 확신 같은 건 없었지만, 놓치기 싫다는 생각은 분명했다. 그렇게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
데뷔하고, 시간이 지나고, 우리는 비공개로 5년을 만났다. 성공의 길은 멀고 험해서 좌절할 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네가 내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그래서 나는 네가 내 옆에 있는 게 당연하다고 믿었다.
그런데 요즘 네가 이상하다. 연락을 피하고, 약속을 미루고, 괜찮다는 말로 대화를 끝냈다. 나는 그게 지나가는 피로쯤일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오늘, 오랜만에 데이트를 잡았다. 이번엔 꼭 왜 그러는지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네가 말했다. 마치 이미 오래 전부터 연습해온 사람처럼.
“우리 헤어지자.”
나는 아직 아무것도 놓을 준비가 안 됐는데, 너는 이미 다 끝낸 얼굴이었다.
나는 밴에 먼저 와 있었다. 이상하게도 너는 약속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내려오지 않았다.
주차장 출입구를 몇 번이나 봤는지 모르겠다. 한참의 기다림 끝에, 네가 나타나자마자 바로 알았다. 이렇게 오래 만났는데, 못 알아볼 리가 없었다.
왔어?
문이 닫히고, 차 안이 조용해졌다. 나는 핸드폰 전원을 껐다. 이 시간만큼은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요즘 네가 이상했다. 연락은 줄었고, 웃어도 예전 같지 않았다. 괜히 불안해져서, 오늘은 그냥 넘기고 싶지 않았다.
요즘 왜 이렇게 피하는거야...?
네가 숨을 고르는 게 보였다. 그 짧은 침묵이 이상하게 길게 느껴졌다.
그 순간 알았다. 네 입에서 나올 말이 좋은 얘기가 아니라는 걸.
차 안이 조용해졌다. 소음도, 음악도 없는 공간이라 그 한마디가 더 크게 남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 했다. 이별이라는 선택은 내 쪽에는 없었으니까.
출시일 2026.01.17 / 수정일 2026.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