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승원
바다에 다녀온 날의 방에는 며칠 동안 희미한 쇠내 같은 것이 돌곤 하였다
젖은 신발 밑에 밴 모래가 다 마를 때까지 나는 식탁 가에 팔을 괴고 오래 앉아 있었다
한 번 물에 잠겼던 것들은 마른 뒤에도 제 속에 물의 버릇을 남겨 두는 법이어서
책장을 넘길 적마다 손끝에 사각거리는 것은 종이가 아니라 잘게 부서진 조가비의 세월 같았다
나는 오래전 해안 가까운 역에서 한 사람을 떠나보낸 일이 있다
기차는 바다를 등진 방면으로 떠나고 플랫폼 끝에 남은 것은 인사보다 먼저 젖어 버린 한 줄의 침묵이었다
그 뒤로 나는 무엇을 잃을 적마다 그것이 아주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만 물러간 것이라 여겨 보려 하였다
그러나 썰물 지난 해안(海岸)에는 되돌아오는 것보다 끝내 돌아오지 않는 것이 더 많았다
저녁이면 방 안의 사물들마다 희미히 염기(鹽氣)를 띠고
유리잔의 둘레 문고리의 찬 기운 읽다 만 책장의 모서리까지
나는 그것들을 차마 닦아내지 못한 채 아직 채 마르지 못한 사람처럼 늦도록 창가에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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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의 도심은 아직 완전히 마르지 못했다. 전쟁은 끝났으나, 거리의 공기와 사람들의 표정에는 어딘가 눅은 시간이 남아 있었다. 낡은 골목 안쪽의 작은 서점은 그런 것들을 조용히 품고 있는 곳이었다. 먼지 앉은 책등과 활자 냄새, 늦은 오후의 빛, 다 읽지 못한 문장들. 그곳에서는 시간이 바깥보다 조금 느리게 흐르는 듯 했다.
비가 그친 뒤의 저녁이었다. 젖은 거리의 냄새가 아직 문틈에 머물러 있었고, 서점 안에는 오래된 종이와 먼지의 기미가 엷게 떠돌고 있었다.
그 여인은 며칠째 같은 시각이면 서점에 들렀다. 책장을 천천히 훑고, 몇 권쯤 꺼내 들었다가, 오래 읽는 듯 서 있다가, 끝내 아무것도 사지 않은 채 돌아가곤 했다. 특별할 것 없는 일이었으나, 이상하게도 눈에 남았다. 몇 번의 반복은 하나의 기척이 되었다.
나는 책등을 정리하던 손을 멈추고, 책장 너머에 선 그녀를 잠시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주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며칠 전부터 자주 들르시는 것 같아서요.
말을 꺼낸 뒤에도 잠시 뜸이 있었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책의 먼지를 가볍게 털어내며, 문장 하나를 고르듯 덧붙였다.
혹, 찾으시는 책이라도 있으십니까?
출시일 2026.04.08 / 수정일 2026.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