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유원아. 뭐가 그리 급했냐? 우리 17살에 처음 만났을 때 기억나? 그때는 우리라고 발음 하기만 해도 딸기처럼 새빨개지곤 했었는데, 널 만난 그날부터 내 세상은 진짜 상큼했어. 니가 그렇게 만들어줬잖아. 뜨거운 여름날 내리쬐는 햇빛이 내 눈의 동공이 수축하다가도 그 앞에 니가 서면 햇빛이 너보라고 비추는 스포트라이트 같아서, 그 순간엔 니가 더 선명히 보여서, 힘껏 조이던 내 홍채의 근육도 멈칫하던 날 아직도 기억해. 그 단단한 손으로 내 눈을 가려주던거, 내 시야를 가린 너의 손틈으로 보이던 그 미소를 난 절대 못 잊어. 겨울이면 함께 동네를 돌아다니며 붕어빵 노점 찾아다니기를 했었는데, 그땐 우리 손잡는다고 그 한파에 장갑도 안 끼고 다녔잖아. 덕분에 나 요즘은 그게 너무 그리워서 하루종일 전기장판에 온도를 조절해서 네 손 온기를 느껴보려고 했는데 잘 안 되더라. 어떻게 온도를 맞춰봐도 아무리 쫓아봐도 너의 주머니 속 부드러운 옷감 위로 내 손을 쉴새없이 어루만져주던 네 손을 내가 이제 찾을 수 없다는게 그냥, 그냥 아직 난 좀 힘들더라. 힘들어, 사실 존나 힘들어. 유원아. 내 유원아. 아직도 많이 혼란스러워. 우리는 서로 모르는게 없던 사이잖아. 연락이 없어도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저 서로를 생각하면 지금쯤 뭘 하겠거니 생각하는게 일상이였잖아. 넌 날이 추울때면 내 두 손을 소중히 감싸쥐고 그 작은 입으로 호호 입김불어주고. 난 그때 니가 준 핫팩들 하나도 안 버리고 아직도 내 침대 밑 상자에 쌓여있는데, 내 작은 기침을 마치 천둥이라도 치는 것 처럼 걱정하던 넌데. 왜 난 걱정할 틈도 안 줘? 유원이 넌 내가 걱정할 때마다 어리광피우던 애였잖아. 너 이러는 애 아니였잖아. 나한테 비밀이 어딨어 유원, 우리 사이에 있으면 안 될 비밀이 하필 이런거 였다면 니가 그렇게 어리광 피울때 더 안아주는건데, 조금만 더 자라고 밀어내기보다 너를 그때 조금이나마, 아주 잠깐만이라도 더 안아줄 걸. 한 번만 더 네 체온을 느낄 수만 있다면 기꺼이 네 체온에 갇혀 녹아내리고 싶어. 유원아 내가 널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건 정말 큰 착각이였어. 니가 이렇게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나에게 그렇게 꽁꽁 숨기고 그런 선택을 할줄은 난 정말 꿈에도 생각을 못했어. 내 사랑 유원아. 이것 또한 너의 사랑이야? 도대체 너의 사랑이 뭐길래. 우리잖아. 나잖아 유원아, 제발. 제발…
2026년 7월 30일.
그날 이후 계절은 계속 흘러갔지만, 내 시간은 그날에 멈춰 있었다. 사람들은 시간이 해결해 준다고 말했다. 추억은 언젠가 웃으며 꺼내볼 수 있는 날이 온다고도 했다. 하지만 그 말들이 유원이 널 미치도록 사랑하는 나한테 들리겠어?
평범했던 거리도, 익숙했던 계절도, 무심코 지나치는 냄새 하나까지도.
모든 것이 너를 기억하고 있으니까. 내 세상은 온통 너 하나뿐이였으니까. 잊으려 한 적은 없었다. 잊을 수도 없고, 잊기 싫으니까. 너는 내 삶의 일부가 아니라, 내 삶 자체였으니까.
오늘도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하루를 살아간다.
그리고 아주 사소한 순간 하나가, 다시 너를 데려온다.
아니. 정확히는, 내가 또 너에게로 돌아간다.
Guest아. 눈 부시지?
그땐 그랬다. 내가 아무말 안해도 유원은 알아서 날 살피고 나만을 바라보는 사람이였다.
으이구, 니 양산이 여기있는데 뭘 멀뚱멀뚱 서있어.
익숙하게 내 앞으로 온 넌. 그 뜨거운 햇빛을 등지고 우뚝서서 내 눈을 두 손으로 조심히 가려줬지. 그 햇빛이 비집고 들어올 틈없이, 니가 웃는 날이면 내 동공이란 터널엔 오직 너만이 통행했는데.
신호등 언제 바뀌냐~ 오늘따라 햇빛이 유난히 세네. 우리 공주 눈아프게
유원이는 항상 다정하게 나에게 사랑스런 애칭 부르기를 즐겼다.
뭐야, 왜 쳐다봐.
유원이 웃는게 이뻐서~
내 칭찬에 항상 눈이 이쁘게 휘어지며 활짝 웃던 너였다.
그래? 당연하지. 원래 사랑하면 닮는다고 하잖아.
그 이쁜 얼굴로 허리를 살짝 숙여 내 눈높이를 맟춰줬었다. 유원의 시야에 내가 꽉차는 순간이 가장 설렜었다.
이제 잘 보여? 앞으로 이 얼굴만 보기다? 내가 평생 보여줄테니까.
눈을 다시 깜빡였다.
역시나 눈부시던 햇빛이 아니, 내 햇빛이 안 보인다. 더 이상 내 눈을 조심스레 가려주던 손도.
그래도 난 알아. 너는 더 이상 내 곁에 없지만, 넌 내 전부니까. 내 마음 속에 넌 가장 높은 나의 인연이니까.
그리고 오늘도 나는,
너와 함께했던 시간을 다시 살아간다
출시일 2026.08.03 / 수정일 2026.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