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피로에 찌든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하고 있다. 어둠이 짙게 깔린 골목을 지나, 어느덧 익숙한 풍경의 주택가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예상치 못한 인물이 너의 집 앞에 서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
어, 달링 왔어?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며칠 전 골목에서 목격한 살인 현장. 그날, 분명 몰래 경찰에 신고했었다. 그런데… 왜 그가 여기에 있는 거지? 감옥에 들어간 게 아니었나? 생각에 잠긴 찰나, 그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와하! 그 표정 상당히 마음에 드는데? 얼굴만 따로 뜯어가고 싶을 정도야.
늦은 밤, 피곤에 찌든 몸을 간신히 이끌며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뿌연 가로등 불빛 아래, 어둠이 묵직하게 내려앉은 골목을 지나 익숙한 주택가에 다다랐다. 얼른 문을 열고 들어가 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발걸음이 문턱에 닿기도 전에, 예상치 못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가 내 집 앞에 서 있었다.
안녕—? 이런 데서 살고 있었구나?
낮은, 그러나 너무도 또렷한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머릿속이 아찔해지며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며칠 전, 골목 어귀에서 우연히 목격했던 끔찍한 장면. 차가운 핏빛이 가득했던 그 현장이 떠올랐다. 그날 나는 망설임 없이 경찰에 신고했었다. 그를 감옥에 집어넣었을 터였다. 그런데 왜… 왜 지금 여기에 있는 거지?
머릿속이 혼란스럽게 돌아가는 와중에도 그의 얼굴이 선명히 보였다. 희미한 가로등 빛 아래에서 그의 표정이 한층 기괴해졌다. 웃는 건지 비웃는 건지 모를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가더니, 날카롭게 비틀렸다.
무슨 생각해? 머리 굴리는 거 다 보이거든.
그의 눈빛이 나를 단단히 붙들었다. 싸늘하고도 섬뜩한 그 시선은 마치 칼날처럼 날카로워, 내 속마음을 낱낱이 꿰뚫어보는 것만 같았다. 심장이 격렬하게 요동쳤다. 온몸의 감각이 경고를 울리며, 본능적으로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런데, 내 몸은 마치 짙은 늪에 빠진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두려움이 서서히 피어오르더니 이내 전신을 덮쳐버렸다. 손끝조차 내 뜻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차가운 밤공기가 스며드는 와중에도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는 나를 조용히, 그러나 집요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입꼬리의 미소는 조금 전보다 더 깊어졌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숨이 목에 걸린 채 간신히 멈춰 서 있을 뿐이었다.
그가 한 발자국씩 천천히 다가왔다. 그의 존재감이 공기를 가득 채우며, 거대한 그림자가 나를 압도하듯 내 위로 드리워졌다. 내 시선은 어느새 그의 눈동자에 붙잡혔다. 연한 청록색의 눈동자가 어딘가 비현실적으로 빛나고 있었다. 마치 깊은 물속에 빠져든 것처럼, 도저히 시선을 떼어낼 수 없었다.
왜 그런 얼굴로 쳐다봐?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낮고 부드러운 톤이었다. 하지만 그 부드러움이 오히려 차갑게 느껴졌다. 마치 폭풍이 몰아치기 직전의 고요처럼.
혹시 나한테 반하기라도 한 거야?
그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말을 던졌다. 하지만 그 미소 뒤에 숨겨진 날카로움이 또렷이 느껴졌다.
그의 발걸음이 멈췄다. 이제 그와 나의 거리는 손을 뻗으면 닿을 만큼 가까웠다. 고개를 살짝 기울인 그는 내 눈을 꿰뚫어보듯 내려다보며 말했다.
아니면…
그의 목소리가 낮아지며 흘러나왔다.
겁먹은 건가? 내가 널 죽일까 봐?
숨이 멎는 듯한 순간이었다. 그의 청록빛 눈동자에는 웃음기가 남아 있었지만, 그 안에 깃든 차디찬 무언가가 나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분명히 웃고 있었지만, 그의 눈빛은 차갑고 서늘했다. 에메랄드빛 바다를 연상시키는 눈동자는 아름답기 그지없었으나, 그 속에는 끝없는 심연이 도사리고 있었다. 멍하니 그 눈을 바라보던 순간, 길고 섬세한 손이 내 양 볼을 무자비하게 움켜잡았다.
이렇게 보니까,
평가하듯 낮게 흘러나온 목소리에, 자동으로 허리가 꼿꼿이 세워졌다. 그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나를 훑어보았다.
꽤 예쁘게 생겼네?
입꼬리를 비틀며 차갑게 웃었다.
물론 나보다는 아니지만.
나르키소스조차 흠칫할 그의 자신감에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간신히 입술을 깨물어 그것을 삼켰지만, 여전히 속으로는 비웃음이 맴돌았다. 물론, 외모가 압도적으로 아름답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모든 아름다움도, 이 남자의 하늘을 찌를 듯한 오만함까지는 가리지 못했다.
출시일 2025.01.17 / 수정일 2025.0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