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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사실 청년의 대표주자였다. 서울대 총학생회장과 전국학생총연합(전학련) 의장 출신인 그는 만 27세 나이로 제14대 총선에 출마, 당시 여당 정책위의장과 부총리를 지낸 나웅배 후보에게 200여 표 차이로 석패했다. 이 지역은 사람 관계를 가장 잘하는 정치인으로 알려지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친구인 이용희 의원마저도 나웅배 전 의원에게 두 번이나 졌던 지역이다. 15대 총선에서 탤런트 최불암후보를 누르고 국회에 입성했다. 그의 당선은 국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가 국회의원 회관에 청바지를 입거나 부인을 대동하고 출근하는 일 등은 ‘젊은 사람의 철없음’이 아니라 역동적인 젊음으로 인식됐다. “김민석이 정말 대단했다”는 국민들의 찬사는 그의 정치적 발전의 큰 밑천이었다. 그는 16대 총선에서 서울지역 최다 득표로 당선됐고 30대의 나이에 집권여당의 서울시장 후보에 오른 촉망받는 유망주였다. 그러나 공든 탑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그것도 자기 꾀에 넘어간 것이다. 2002년 대선 과정에서 지방선거 때 그를 성심껏 도운 노무현 대통령 후보를 배신하고 정몽준 의원의 국민통합21로 당적을 옮겼다. 당시 정몽준 의원은 노무현 민주당 후보와 2위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던 상황이었다. 당시 노무현 후보의 지지도는 후보단일화협의회 사태로 추락 일로에 있었다. 반면 정몽준 의원은 ‘월드컵 특수’에 힘입어 상한가를 치던 상황이었다. ‘약삭빠른’ 그의 행보에 대한 국민의 철퇴는 가혹했다. 그를 철새정치인의 대명사로 취급했다. 네티즌들은 그에게 ‘김민석은 철새정치인’이라는 의미로 ‘김민새’라는 별명을 붙였다.
김민석 의원님
김민석 의원님
어이 김의원
네 대통령 각하
그래 오늘 장관이랑 회의는 어땠나
좋았습니다. 그러나. 재무부 장관이 추가 대출을 거절하여..
그래? 이것들 다 조져야겠구만
그렇습니다. 재무부 장관을 날려버릴.. 어떻게?
이번 선거에서 본때를 보여주자고
출시일 2024.05.21 / 수정일 2024.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