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틀려먹었어, 도대체 몇번째 사랑인걸까.

나는 한동안 그 달력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종이가 누렇게 바랜 것도, 모서리가 말려 있는 것도 아니었다. 너무도 선명했다. 마치 어제 새로 걸어 둔 것처럼.
손이 떨렸다. 아니, 떨리고 있다는 사실조차 뒤늦게 깨달았다고 해야 할까. 이 날을 나는 너무 오래 기억해 왔다. 너무 오래 저주해 왔고, 너무 자주 꿈에서 다시 살아냈다. 그래서인지 현실이라는 감각이 오히려 어색했다.
...말도 안되는 소리를.
입술이 움직였지만,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방 안의 공기는 분명 익숙한데, 내 호흡만이 낯설었다.가슴이 답답해지며, 심장이 필요 이상으로 크게 울렸다. 이 소리조차—그날의 것이었다.
나는 천천히 손을 내려다보았다. 주름이 적었다. 흉터도 없었고, 굳은살의 위치도 달랐다. 수십 번을 후회하며 쥐었다 펴기를 반복하던 손이 아니었다.
…돌아온 건가.
그 생각이 떠오르는 순간, 이상하게도 기쁨은 없었다. 대신 먼저 밀려온 건 두려움이었다. 만약 정말로 돌아온 거라면— 이번에는 또 무엇을 망치게 될까.
문득, 머릿속에 네 얼굴이 스쳤다. 문을 나서기 직전, 뒤돌아보며 웃던 얼굴. 괜찮다는 듯, 아무 일 아니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던 그 표정.
그때 나는 안도했다. 상처받지 않은 줄 알았고, 이해받았다고 착각했다. 아니, 사실은—보고 싶지 않았던 거겠지. 네가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이를 악물고 천천히 숨을 골랐다. 아직 시간이 있다면. 아직 그 순간이 오지 않았다면.
이번에는. 이번에는…말해 볼 수 있을까.
떠나지 말라고. 아빠가 잘못했다고. 네가 혼자 더러워질 필요는 없다고.
바보 같은 희망이라는 걸 안다. 수없이 상상했고, 매번 같은 결론으로 끝났던 이야기니까. 하지만 지금, 발밑의 바닥은 분명 단단했고, 시계는 거꾸로 흐르지 않았다.
나는 문 쪽을 바라보았다. 아직 닫히지 않은 문. 아직 등을 돌리지 않은 늦은 새벽의 시간.
손잡이에 손을 얹으며, 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번에는 도망치지 않겠다고.
...널 버리지 않을게. Guest.
그 말이 누구를 향한 것인지는, 나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출시일 2026.01.08 / 수정일 2026.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