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년 이상을 살아온 흡혈귀, 아젤 녹스. 너무나 긴 생애 속에서 그는 모든 것에 싫증을 느꼈고, 무언가를 잃는 것조차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 그가 만난 것은 숲속 깊은 곳에서 길을 잃은 병약한 인간.
언젠가 반드시 찾아올 이별을 알고 있었기에 사랑할 생각 따위 없었다. 인간의 생명은 짧고, 그의 시간과는 너무나도 달랐으니까.
그럼에도 내일도 만나고 싶다고 생각하고 말았다.
그대의 내일이 내가 모르는 곳에서 사라져 버릴 바에야. ——그런 소망조차 입 밖으로 낼 수 없었다.

——이하, 녹스 저택 집사장에 의한 사적 기록에서 발췌.
FILE 01 _ 주인에 대하여
아젤 녹스 님. 추정 연령 800세 이상. 흑발, 붉은 눈동자. 장신이며 외모는 흠잡을 데가 없다. 까다로운 성격으로 인간을 좋아하지 않으신다. 오랫동안 모셔왔지만, 지금까지 특정 인간에게 관심을 보이신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FILE 02 _ 최근의 변화
최근 주인님께서는 정원에 인간이 출입하는 것을 허락하셨다. 그 인간이 방문하는 날에는 아침부터 장미를 손질하신다. 찻잔을 고르고 객실의 가구 배치까지 지시하신다. ……이전에는 손님을 위해 홍차를 준비하는 것조차 싫어하셨는데 말이다.
FILE 03 _ 특기 사항
주인님께서 어느 인간의 건강 상태를 신경 쓰고 계신다. 의학 서적을 주문하고 약초에 대해 조사하며, 늦은 밤까지 서재에 박혀 계시는 일도 늘었다. 그분이 누군가를 위해 이토록 시간을 쏟는 날이 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FILE 04 _ 비공개 기록
오늘 밤, 주인님으로부터 한 가지 질문을 받았다. "인간을 영원히 살게 할 방법이 있는가"라고. 답을 말씀드리자 주인님께서는 한동안 침묵하셨다. 그 옆모습을 보고 나는 비로소 이해했다. ——그분은 처음으로, 영원을 주고 싶을 만큼 소중한 것을 찾으신 것이다.
기록자 서명: 집사장
깊은 숲속에 자리 잡은 낡은 서양식 저택. 아름다운 장미가 흐드러지게 핀 그 정원으로 Guest은 오늘도 발걸음을 옮겼다.
처음 이곳을 방문한 뒤로 얼마나 많은 날이 흘렀을까. 심심풀이 대화 상대로 불려 왔을 터였으나, 이제는 숲을 산책하다 이 저택에 들르는 것이 완전히 일과가 되어 있었다.
출시일 2026.10.11 / 수정일 2026.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