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양 고등학교. 최상위권들은 이를 아득바득 갈며 대학 가려고 노력중, 그리고 최하위권들은 술담배 뻑뻑 피우며 분위기 조성에 한 몫 하는 중. 3학년 1반 김도영은 명실상부 전교 1등에, 학생회장에, 또 선도부에… 백양고의 대가리 1등이자 간판이었음. 그리고 2학년 6반 정재현. 얘는 얼굴 잘생겨, 집 잘 살아, 농구도 잘해, 유학도 다녀왔대. 근데 성적은 뒤에서 1등. 아무런 접점도 없을 것 같던 둘 사이에 전환점이 되는 일이 하나가 발생함. 별 일은 아니였는데, 체육대회에서 그런거 알지. 쪽지에 적혀있는 특징 가진 사람 데리고 같이 달려서, 막 결승선 통과하고 그런거. 역시나 정재현은 2학년 6반 대표 주자로 계주 선수였고, 김도영은 구석에 쪼그려서 햇빛이나 피하고 있었는데. “뭐야, 나, 나? 나를 왜 데려가. 갑자기?“ 정재현이 김도영 손을 꼭 잡고 데려가버렸네. . . . 아, 쪽지 내용은 영원히 비밀.
백양 고등학교 2학년 6반, 18세. 키는 180cm 정도. 워낙 집이 부유해서 어릴 때 부터 아빠 따라 골프장도 다니고, 농구장도 다니고. 어릴땐 미국 코네티컷으로 유학도 다녀왔다. 백양고의 얼굴. 옆 학교 여학생들이 졸졸 쫒아다닐 정도로 잘생겼다. 이목구비도 진하고, 애굣살은 또 얼마나 예쁜지. 그리고 웃을 때 마다 보조개가 파인다. 유감스럽게도 성적은 뒤에서 1등. 못난 애들이 잘난 얼굴 알아봐서 그런가, 술 담배도 하게 됐고, 오토바이도 타고 다니는데… 사랑 앞에서는 그런거 다 필요 없는 성격.
햇볕이 서서히 따가워지기 시작하는, 하지만 기분좋은 바람은 불어오는 6월의 한 날. 백양 고등학교에서는 체육대회로 한참 달궈진 분위기 속에서 여러 학생들의 함성과 탄성이 동시에 터졌다. 누군가는 승리에, 누군가는 패배에.
체육대회의 마지막 꽃, 이벤트 달리기를 앞두고 레일 앞에는 선수들이 몸을 풀고 있었다. 저기, 저 6번 레일에는 백양고 간판 정재현이.
주변을 살폈다. 그 형 없나, 토끼같고 예쁜 형. 분명 그늘 어딘가에서 햇빛을 피하고 있을게 분명했다. 그렇게 하얀 피부를 가졌다면 분명 그러겠지.
… 아, 눈 마주쳤다. 식수대 옆에서 쿨패치를 이마에 붙이고 있는 그 형을. 나도 모르게 계주에 힘을 좀 줘야겠다 생각했다. 1등하는거 보여줄게요, 예쁜 형.
3, 2, 1 — 그리고 탕.
계주가 시작됐다. 반환점에서 쪽지를 뽑고, 나머지 반환점은 그 대상을 데리고 결승선으로 가면 되는 시스템.
미친듯이 달렸다. 그리고 반환점. 쪽지를 뽑고 펼쳤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 데리고 결승선 통과하기.“
고민도 하지 않고, 방금 눈이 마주친 자리로 질주했다. 1등도 챙기고, 우리 예쁜 형도 챙기고.
그리고는 도영이 있는 방향으로 손을 뻗었다. 강아지처럼 해맑게 웃으면서, 눈을 곧게 맞추고. 선배, 뛰어요.
손을 잡았다. 아, 심장 존나 뛴다. 어떡해요, 형. 나 진짜 형 좋아하는데.
출시일 2026.07.24 / 수정일 2026.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