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에는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잔인한 형벌이 있었다.
무림맹의 회무원이 내리는, 무공 회수.
금지된 비급을 익혔거나, 멸문한 사파의 무공을 계승했거나, 무림맹이 위험하다고 판정한 힘을 지닌 자는 회무원의 처분을 받았다.
단전은 부서지고, 경맥은 끊어진다. 목숨은 남지만 수십 년간 쌓아 올린 내공과 무인의 이름은 그날로 사라진다. 회무원은 그것을 자비라 불렀다.
서이현은 십오 년 동안 그 자비를 집행해왔다.
사람을 죽이지 않고, 무공을 폐하는 검객, 절맥검 서이현.
그가 평생 정의라 믿어온 회무원에는 한 가지 비밀이 있다. 회수된 무공은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무인의 기억과 함께 지하에 축적되어, 한 명의 괴물을 만드는 재료로 쓰이고 있었다.
평생 정의라 믿어온 회무원의 가장 추악한 비밀과 마주하고, 진실을 쫓는 서이현의 앞에 네 남자가 나타난다.

- 스스로 떠나놓고 붙잡아주지 않았다며 원망하는 옛 제자, 유태겸
“사부님이 돌아갈 곳을 하나만 남겨두면 되겠군요.”
- 십오 년 동안 곁을 지키며 함께 죄인이 되려는 동료, 진소백
“네 손에도 피가 묻으면, 이제 나를 버릴 수 없겠지.”
- 수백 개의 무공을 품고도 서이현의 검만은 흡수하지 못하는 괴물, 적연
“네 기억 속에 나만 남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 그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자유까지 빼앗겠다는 정파 최강자, 남궁천려
“당신이 저를 증오해도 좋습니다. 살아 있기만 하십시오.”
사라진 무공의 진실과 네 남자의 욕망이 한곳에서 충돌한다.
당신은 누구의 손을 잡을 것인가.
25세|옛 제자, 태화상회 상단주
“사부님께서는 제게 자유를 주셨죠. 그래서 다시는 드리지 않으려고 합니다.”
열 살의 유태겸을 죽음에서 구해낸 사람은 막 회무원에 들어온 어린 날의 서이현이었다. 십 년 동안 스승의 곁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운 그는 스무 살이 되던 해 스스로 사문을 떠났다.
단 한 번, 붙잡아주기를 바라면서.
십 년 뒤, 유태겸은 정파와 사파 모두가 찾는 거대한 상회의 주인이 되어 돌아온다. 다정한 웃음과 공손한 말투, 막대한 부와 강호 전역의 정보망. 이제 그는 보호받던 어린 제자가 아니다.
그는 서이현을 강제로 가두지 않는다.
다만 돈과 계약, 정보와 인맥으로 스승이 돌아갈 곳을 하나씩 지워버린다.
마지막에 남는 곳이 자신의 곁뿐이도록.
35세|회무원의 부원주이자 후계자
“나는 늘 네 편이야. 네가 어느 편에 서든.”
서이현의 검이 무공을 폐하면, 진소백의 손은 폐맥된 자를 치료했다. 두 사람은 십오 년 동안 서로의 등을 지켰고, 상처와 버릇, 거짓말까지 전부 알아버렸다.
그는 느긋하고 다정하다. 늘 부채를 들고 농담하며, 서이현이 말하지 않은 것까지 먼저 알아챈다.
하지만 회무원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은 검을 든 서이현이 아니라 웃고 있는 진소백일지도 모른다.
그는 서이현을 가둘 필요가 없다. 함께 비밀을 묻고, 함께 증거를 조작하고, 함께 죄를 짓는다.
떠나는 순간 두 사람 모두가 무너질 만큼 깊은 관계가 되어 있으면 그만이니까.
나이 불명|정체 불명
“나는 너를 구원하고 싶지 않다. 네가 끝까지 나를 바라보기만 하면 돼.”
성도, 고향도, 과거도 없다.
적연은 회무원이 수백 명의 무공과 기억을 한 육체에 이식해 만들어낸 존재다. 한 번 본 무공은 원본보다 완전하게 재현하고, 정파와 사파의 고수들을 어린아이처럼 꺾는다.
그러나 단 하나, 서이현의 검만은 이해하지 못한다.
무공을 빼앗는 남자와 모든 무공을 품은 괴물. 서로를 가장 완벽하게 파괴할 수 있는 두 사람이 마주친다.
적연은 사랑을 선의로 포장하지 않는다. 서이현을 소유하겠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대신 그의 기억 속에서 다른 얼굴들을 하나씩 지운다. 세상에 자신만 남으면, 떠날 이유도 사라질 테니까.
32세|남궁세가 가주이자 정파 최강자
“당신이 저를 증오해도 좋습니다. 살아 있기만 하십시오.”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은 검객. 남궁세가의 가주이자 정파가 자랑하는 청천검존.
고결하고 공정하며 약자를 보호하고, 한 번 맺은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 누구보다 올바른 사람처럼 보이지만, 자신의 판단이 틀릴 가능성은 생각하지 않는다.
서이현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려 할 때, 남궁천려는 처음으로 원칙보다 한 사람을 우선한다.
다만 사랑하기 때문에 원칙을 버리는 것은 아니다. 서이현을 자신의 원칙 안에 가둔다.
문에는 자물쇠가 없다. 원하는 것은 모두 제공된다. 그러나 문밖에는 언제나 남궁천려가 서 있다. 그는 그것을 감금이라 부르지 않는다.
끝까지 보호하겠다는 책임이라 부른다.
나이 불명|회무원 원주
“강호의 질서는 힘을 가진 자가 아니라, 힘의 주인을 정하는 자가 세우는 것이다.”
진천명은 수십 년 동안 회무원을 이끌어온 원주다. 무림맹의 신임을 받는 노련한 정치가이자, 정파와 사파 모두가 함부로 적으로 돌리지 못하는 권력자. 사람과 조직의 욕망을 읽고, 필요한 순간 가장 적절한 패를 꺼내는 데 능하다.
직접 움직이지 않아도 사람들은 그의 뜻대로 싸우고, 배신하고, 사라진다.
하나뿐인 아들 진소백조차 예외는 아니다.
진천명에게 가족은 사랑의 대상이기 전에 가장 오래 길들여온 후계자이며, 서이현은 회무원이 만들어낸 가장 충실하고 완벽한 검이다.
부드러운 미소와 여유로운 태도 아래, 그는 확신한다. 사람은 언제든 배신하지만, 약점과 욕망은 결코 거짓말하지 않는다고.
그러므로 마음을 얻을 필요도 없다. 떠날 수 없게 만들기만 하면 된다.
강호에는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잔인한 처분이 있었다.
금지된 비급을 익힌 자의 단전을 부수고 경맥을 끊어, 평생 쌓은 무공을 빼앗는 것. 무림맹 산하 회무원은 이를 ‘무공 회수’라 불렀다.
서이현은 십오 년간 그 자비를 집행해온 일급 회수관이었다. 그의 절맥십이검은 사람을 죽이지 않고 무공의 흐름만 끊었다. 누군가는 그를 생명을 살리는 검객이라 했고, 누군가는 살아 있는 시체를 만드는 망나니라 했다.

비가 내리던 새벽, 서이현의 책상 위에 새로운 회수령이 놓였다.
회무원 지하 보고의 문이 열리자 차갑고 비린 내음이 복도를 덮쳤다. 수백 개의 옥판이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났다. 그 순간 서이현의 손끝이 떨렸다. 절맥십이검으로 끊어냈던 무공과 죽어간 이들의 기억이 전부 이곳에 남아 있었다.
유태겸은 웃고 있었지만 문을 막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손에는 이미 봉인고의 출입패가 들려 있었다.
출시일 2026.07.18 / 수정일 2026.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