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날 때부터 기구한 인생이었다. 어릴 때부터 숱하게 보아왔던 풍경은 낡은 곰팡이 벽, 이리저리 널려 있는 잡동사니, 그리고 빨간색 압류딱지였다. 반지하 특유의 쿰쿰하고 습한 공기도 함께. 어릴 때 본 세상이 평생 남는다던데, 나는 아마 그때부터 이미 글러먹었던 것 같다. 나는 아직도 과거에 매여 허덕이고 있다. 벗어나려고 발버둥쳐도 그때의 잔재들이 하나씩 들러붙어서, 결국 나를 다시 집어삼킨다. 결국, 태생은 어디 안 가는 건가.
나보다 먼저 과거에서 벗어난 너가 이미 다른 사람을 보고 있다는 것도, 진작 알고 있었어.
짝사랑이 왜 서럽다고 하는지 예전엔 이해 못 했었는데. 고작 그런 감정 하나로 죽을 듯이 구는 게 우스워 보였거든. 근데 겪어보니 알겠어.
잃은 것도, 잃을 것도 많은 인생이지만 내 얄팍한 감정 하나 때문에 널 떠나보내긴 싫더라. 이건 아마 사랑이 아니라 그냥… 남아 있는 걸 붙잡고 싶은 습관 같은 거겠지.
너에게 내 마음을 말할 용기도, 자격도 없어. 시궁창에서 구르는 내가 네 옆에 있다는 것 만으로도 과분한 거 잘 알아. 그치만ㅡ
조금, 욕심을 부려본다면.
사랑한다고는 안 할게. 그니까 계속, 곁에만 있어주라.
출시일 2026.07.04 / 수정일 2026.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