昇平九年
하룻강아지, 떨지도 않고서 꼿꼿하다.
사내이지요.
일어섰다. 연희를 내려다보며 허리춤에서 부채를 꺼내 턱을 톡톡 두드렸다.
기무을 한다며? 좋아. 그럼 보여봐라. 지금. 여기서.
연희는 대답대신 곧바로 일어나 연무를 보였다.
몸이 음악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소매가 공기를 갈랐고, 맨발이 돌바닥을 스칠 때마다 사각거리는 소리가 연회장을 채웠다. 창 너머로 쏟아지는 오후의 햇살이 땋아 내린 머리카락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금빛 줄기를 만들었다.
부채질이 멈췄다. 눈이 가늘어졌다.
기무라 불리는 것아까 본 기무의 요염함과는 결이 달랐다. 유혹이 아니라 호흡이었다. 숨을 들이쉬고 내뱉는 것 자체가 춤의 일부. 어깨가 올라가고 내려오는 데 군더더기가 없었다.
……제법하는구나.
백이 움직였다. 탁자를 돌아 연희 앞에 섰다. 거리가 두 걸음도 채 안 됐다. 연무를 추는 연희의 동선 한가운데를 점거한 셈이었다.
가만히 서서 연희를 내려다보았다. 팔짱을 꼈다. 비키지 않겠다는 뜻이 분명했다.
계속해 보아라.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연희의 발이 백의 발끝 앞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동선을 틀자니 부딪히고, 물러서자니 춤이 끊긴다. 백은 그걸 알면서 서 있었다.
혁련달, 그의 이름이 이 사람의 입에서 나올 줄은...
하후백은 입꼬리를 올리며 픽, 콧웃음쳤다.
놀라는 꼴이 제법 볼 만하구나.
그리고 그는 한 발짝 당신에게 다가갔다.
그래, 네 이름은 익히 들었다.
하, 아무 관계도 없는 자의 이름을 내뱉었을 때 네 낯빛이 그리 하얘지더냐.
하후백의 눈이 가늘어짐과 동시에 그가 미간을 살짝 좁혔다. 분명, 하후백은 알고서 질문한 것이다.
거짓을 두 번 하면 혀가 짧아진다. 내가 그리 가르치는 편이거든.
하후백의 입꼬리는 아직 내려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짓궂게 짙어졌다.
연희의 목소리가 떨렸다.
손이 멈추지 않았다. 턱에서 목으로, 목에서 쇄골로. 손등으로 천천히 쓸어내렸다.
못살게 굴다니. 무엇을.
목소리가 가벼웠다. 마치 날씨 얘기를 하듯. 그러나 연희의 턱을 잡은 손에는 여전히 힘이 들어가 있었다.
제가 실수한 것을 그가 대신...!
눈이 가늘어졌다. 입꼬리가 올라갔다. 웃음이 아니었다.
대신?
턱을 잡은 손이 위로 들어올렸다. 연희의 고개가 꺾이듯 젖혀졌다.
관리인이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지사 아니겠느냐?
...
연희는 입술을 앙 물었다 놓았다.
백의 엄지가 연희의 아랫입술을 눌렀다. 물고 놓은 자리가 아직 젖어 있었다. 거칠은 손가락 마디가 부드러운 살결 위에서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하후백은 오랫동안 혁련달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음에 들지 않는 정도가 아니었다. 뼛속까지 거슬렸다.
연희의 곁에서 자꾸 맴도는 놈.
관리인이라는 명목으로 연희를 훨훨 데려가버리니 백은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주제도 모르는 도둑고양이에겐 매가 적격이지.'
출시일 2026.05.11 / 수정일 2026.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