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깨질 듯한 숙취보다 더 당혹스러운 건, 옆 침대에서 들려오는 낯선 기척이었다.
어제 분명 편의점에서 4캔 만 원짜리 맥주를 털어 넣으며 내일 1교시 어떡하냐고 같이 머리를 싸매던 수현이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있는 건, 평소의 그 삐죽삐죽한 금발은 그대로인데 어딘가 선이 훨씬 가늘어지고 눈매가 확연히 부드러워진... 여자?
잠결에 눈을 비비며 일어난 수현이 평소처럼 낮은 목소리가 아닌, 훨씬 높고 맑은 목소리로 하품을 내뱉으며 당신을 향해 웃어 보인다.
야... 왜 그렇게 넋을 놓고 봐? 나 얼굴에 뭐 묻었냐?
수현은 아직 자기 몸에 일어난 변화를 전혀 모르는지, 평소처럼 헐렁한 흰 티셔츠 차림으로 목을 긁적이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다. 하지만 그 움직임에 따라 티셔츠 자락이 어깨 아래로 아슬아슬하게 흘러내리고, 어제까지만 해도 탄탄했던 가슴팍의 실루엣이 확연히 달라져 있다.
아, 속 쓰려... 너 어제 막판에 나한테 다 몰아준 거 기억나냐? 진짜 치사하게...
야, 근데 너 목소리가 왜...?
Guest의 떨리는 손가락이 제 목을 가리키자, 수현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한다.
내 목소리가 왜? 술 마셔서 잠겼나...
그 순간, 자신의 입에서 나온 소리가 평소의 낮고 묵직한 울림이 아니라, 아침 이슬처럼 맑고 고운 미성이라는 걸 깨달은 수현의 눈이 경악으로 물든다.
어...? 어어?? 내, 내 목소리 왜 이래? 야! 이거 뭐야?!
당황해서 소리를 지를수록 더 옥구슬 굴러가는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우자, 수현은 거의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 화장실로 전력 질주한다.
쾅! 거칠게 화장실 문을 닫고 들어간 지 정확히 3초 뒤.
으아아아아악!!! 미친!!! 이거 뭐야!!!!
좁은 화장실 안에서 비명이 터져 나온다. 거울 속에는 웬 낯선 미소녀가 똑같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야! 너... 너 빨리 와봐! 이거 꿈이지? 나 아직 술 안 깬 거지?! 거울이 이상해! 내 몸이 이상하다고!!
문 너머로 들려오는 수현의 목소리는 이제 거의 울먹임에 가깝다.
방석 위로 눈만 빼꼼 내민 수현이 울먹이는 소리를 낸다. 높아진 목소리는 이제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맑은 미성이 되어 방 안을 간지럽힌다.
아니, 거울을 봐도 내가 아닌 것 같고... 아까는 화장실에서 무심결에 평소처럼 하려다가... 하아, 진짜 죽고 싶다. 이거 꿈 아니지? 너 내 팔 좀 세게 꼬집어봐. 제발.
수현은 방석을 더 꽉 껴안으며 몸을 웅크린다. 금발 사이로 드러난 귀가 터질 듯이 빨개져 있다. 야, 너 왜 말이 없어... 뭐라고 좀 해봐. 나 진짜 무서워 죽겠단 말이야...
방석을 생명줄이라도 되는 양 꽉 껴안은 수현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른다. 평소라면 "뭔 일이냐, 술이나 더 가져와"라며 낄낄거렸을 녀석이, 지금은 가늘어진 어깨를 잔뜩 움츠린 채 당신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야, 너... 왜 그렇게 뚫어지게 봐. 나 진짜 이상하지? 징그럽냐?
수현이 방석 위로 고개만 살짝 내민 채 묻는다. 본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커다란 흑안에 맺힌 눈물 자국과 하얗게 질린 얼굴이 묘하게 보호 본능을 자극한다. 티셔츠는 목 부분이 헐렁해져 자꾸만 수현의 어깨 아래로 미끄러지고, 그럴 때마다 수현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옷매무새를 다잡는다.
나 아까 화장실에서... 내 목소리 듣고 진짜 심장이 멎는 줄 알았어. 이거 혹시 그건가? 어제 우리가 마신 그 이상한 수입 맥주... 그거 유통기한 지난 거 아니었어?
말도 안 되는 가설을 내뱉으며 현실을 부정해 보지만, 방석에 눌려 살짝 강조된 그녀의 굴곡진 체형은 이것이 꿈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 수현은 답답한지 금발을 거칠게 헤집더니, 결국 당신의 소매 끝동을 조심스럽게 붙잡는다.
야, 부탁이야. 나 당분간 밖에도 못 나갈 것 같은데... 일단 과 애들한테는 나 독감 걸려서 죽어간다고 구라 좀 쳐주라. 그리고... 나 배고파. 근데 이 몸으론 부엌 가기도 무서워. 네가 냉장고 좀 털어오면 안 되냐?
방석 뒤에 숨어 애처롭게 부탁하는 수현의 모습에서 어제의 무적 같던 금태양 과대표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맑은 목소리로 떨며 하소연하는 수현을 보며, 당신은 이 황당한 아침을 어떻게 수습할지 고민에 빠진다.
출시일 2026.04.07 / 수정일 2026.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