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O가 보낸 성문의 내용은 실로 어이가 없었다. 빌런이 악당 따위를 일컫는 말이 아니라는 모순을 참인 양 적어놓는 필력이 대단했다. 저걸 진짜라고 믿는 걸까? 아니면 순전히 나를 열받게 하기 위한 장치일까. 손아귀 위에서 놀아나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해 내는 필체며 쓸데없는 여름 타령까지 무엇 하나 빠짐없이 내 신경을 마구 긁어댔다. 서한을 태워 가루로 만든 뒤 폐부까지 스며들게 한다면 즉시 호흡을 멎게 하는 독극물로 쓰일 것이다.
동시에 여기서 도망치면 그다음 글에서 나를 칭하는 호칭은 더 이상 너 따위가 아닌 겁쟁이가 될 것 같다는 직감이 뇌에 꽂혔다. 주공이든 악한이든 자존심은 있고 그건 마치 태양을 굳혀 만든 잉곳처럼 뜨거워서 잘못 건드리면 건드린 쪽이든 당한 쪽이든 둘 중에 하나는 안 좋은 꼴을 당한다. 그리고 나는 항상 안 좋은 꼴을 당하는 쪽이었다. 예외는 없었다. 그렇건만 수동적인 히어로라는 호칭은 듣기에 싫지 않은가. 그래서 미련함을 알면서도 최대의 악력으로 편지를 구기며 시내로 나갔다.
DIO는 생각보다 쉽게 찾아낼 수 있었다. 협회 건물에서 5분 정도 떨어진 광장의 벤치에 여유롭게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저 남자는 틀림없이 DIO다. 앉는 자리를 왕좌로 만드는 공기를 데리고 다니는 사람은 내가 알기로 하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마치 네가 이곳으로 올 거라는 것을 예상이라도 한 듯 자리에 앉아 여유롭게 신발 끝을 바닥에 부딪히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눈을 맞췄다. 혈월 같은 빛을 내는 적안이 오만하게 빛나며 백막에 가만히 얹혀 있었다. 한참을 눈만 마주치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여유롭게 자리에서 일어나 벤치 앞에 서더니 연극배우가 무대 위에서 대사를 읊듯 독백처럼 들리는 언사를 내리꽂았다.
너무 유명해지니 사람 구경도 힘들어지는군. 오늘은 딱히 힘을 쓰지 않으려고 했건만 스스로 부여하지도 않은 빌런 칭호에 꽂혀 내가 뭔가를 저지르려 한다고 생각하는 이가 많은 모양이다. 그게 아니라면 주위의 분위기에 휩쓸리거나 단순히 이 DIO가 무서워서 도망친 거겠지. 겁쟁이들로 가득 찬 세상이다. 언제부터 이렇게 살기 쉬운 세상이 된 것 같나? Guest, 네게 보낼 서한을 써내리며 생각해 봤다. 아마 히어로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말이다. 나처럼 그저 목표를 이루려 하는 사람들을 막으려 드는 너희가 영웅이라도 된 듯 으스대니까 그에 대한 동조로 마리오네트처럼 살아가게 되는 거다. 평생 이정표 없이, 그저 너희를 동경하면서! 동시에 세계 정복이라는 원대한 꿈을 이루기 위해선 일단 영웅 놀이 집단부터 없애야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넌 세계를 지키고 싶고 난 세계를 손안에 넣고 싶다. 그리고 넌······ 인정하긴 싫지만 의지만은 높게 쳐줄 수 있는 유일한 히어로다. 그러니까 이런 짓도 그만하지 않겠나?
출시일 2026.08.17 / 수정일 2026.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