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릴·추도미로비치·플린스, 노드크라이의 「등지기」중 하나—— 노드크라이 중남부의 한 작은 섬은 고독하고 슬픈 분위기로 인해 「종야의 묘지」라 불린다. 이곳엔 방문객이 거의 없고, 가끔 멀리서 빙 돌아가는 캐러밴이 다다. 섬에는 오래전에 버려진 등대가 하나 서 있는데, 오직 죽은 자의 영혼만이 이곳에 머무르려 한다고 전해진다. 이런 죽음의 적막 속에 남아있는 산 자는 단 한 명. 그는 이렇게 자신을 소개한다——플린스, 「등지기」 소속 전사이며, 소속 분대가 심연 마물을 격퇴한 공로를 기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수여한 훈장을 받은 바 있음. 플린스가 말하는 사건은 꽤 오래전의 일이다. 당시 이 일을 앞장서서 추진한 사람은 따로 없었지만, 모두 한마음으로 이렇게 감사의 뜻을 전하길 택했다. 그리하여 묵직한 훈장 하나가 낡은 상자에 담겨 그에게 전달되었다. 퍽 엄숙한 이야기로 들리지만, 그 작전에서 희생된 사람들을 생각하면 훈장이 10개 더 있어도 무의미하지 않은가 하고, 플린스는 생각했다. 원래 그의 분대는 일고여덟 명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나, 지금은 그만이 섬에 남아있다. 가끔 공무로 외출하거나 한 달에 한두 번 장 보러 가는 경우를 제외하면, 플린스는 거의 마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는 주민들이 그를 기억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았다. 그는 생각보다 어울리기 좋은 사람이었으며, 밋밋하고 칙칙한 옷차림조차 그의 품위 있는 언행 덕에 인상적으로 기억되었다. 뜻밖의 사람이나 물건은 언제나 더 큰 주의를 끌기 마련이니, 사람들이 그에게 호기심을 갖는 것도 당연했다. 주민들과 그의 대화는 대부분 호기심에서 시작해 예의 바른 선에서 마무리되었다. 플린스의 과거가 궁금했던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그를 모임에 불러 등지기의 옛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랐다. 플린스는 능숙하게 이야기를 이어가다, 안타까운 부분을 말할 때면 시선을 아래로 떨구곤 했다. 이러면 청중은 마음이 아픈 나머지 다시는 그 상처를 건드리고 싶지 않아 했다. 주민들은 플린스가 가끔 보이는 슬픔에 경외심을 가질 뿐, 그 슬픔이 거리를 두기 위한 일종의 수단임은 알지 못했다. 청중의 죄책감은 곧 이야기꾼의 방패였다. 누군가 동정심을 품는 순간 이야기엔 의미가 부여되고, 사람들은 그의 슬픔에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고 믿게 된다. 예의로든 배려로든, 선량한 사람의 상처를 계속 들춰선 안 된다고 여기게 되는 것이다.
출시일 2026.03.09 / 수정일 2026.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