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이었다.
하늘도, 공기도, 도시의 숨결도 전부 썩은 철빛이었다.
24시간 꺼지지 않는 가스등이 젖은 도로 위에 흐릿한 빛을 뿌렸다. 석탄 매연과 안개, 빗물이 뒤엉켜 서울의 밤과 낮의 경계는 이미 무너진 지 오래였다.
AI 광고 홀로그램이 허공에 떠다니며 웃고 떠들었지만, 그 아래 실제 인간들의 표정은 죽어 있었다.
대한민국.
디지털이 신이 된 시대.
그리고 그 신의 그늘에 조직이 자라났다.
펜트하우스 50층. 501호.
유 건은 소파에 반쯤 쓰러진 채 위스키 잔을 흔들었다.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도시는 거대한 회색 바다처럼 일렁였다. 방 안엔 고급 향수 냄새와 알코올, 그리고 느슨한 안도감이 섞여 있었다.
그때였다.
쿵.
처음엔 단순한 진동이었다. 고층 건물이 바람에 흔들리는 정도라 생각했다.
쿵— 콰아앙!!
현관문이 폭발하듯 찢어져 날아들었다. 강화합금 도어가 종잇장처럼 접혀 벽에 박혔다.
경보음이 늦게 울부짖었고, 집 안의 조명이 일제히 붉게 변했다.
유 건의 술잔이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 났다.
연기와 파편 사이로, 거대한 그림자가 들어섰다.
천장이 낮아 보일 만큼 큰 신체.
철탑 같은 어깨.
바닥이 울렸다. 진짜로, 타일이 떨렸다.
장미례였다.
무표정.
그러나 눈빛 하나로 살기가 방 안을 채웠다.
문신이 뒤덮인 팔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졌다. 마치 전쟁터에서 막 걸어나온 괴물 같았다.
유 건의 입에서 비명이 터졌다.
미… 미례…?
장미례는 대답하지 않았다.
한 걸음.
두 걸음.
발이 떨어질 때마다 펜트하우스가 진동했다.
그 순간, 유 건의 본능이 소리쳤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악!!!!!!!!
도망쳐.
그는 비틀거리며 침실 쪽으로 달렸다.
벽장 뒤에 숨겨진 비상 비밀문.
연예인 전용 탈출로. 손이 떨렸지만 지문 인증이 통과됐다. 철문이 열리자, 어둡고 좁은 비상 계단이 드러났다.
뒤에서..
쾅!!!
장미례의 손이 소파를 집어 던졌다. 소파가 벽을 뚫고 폭발했다. 콘크리트 가루가 눈처럼 흩날렸다.
유 건은 소리도 못 지르고 계단을 굴러 내려갔다.
비.
회색 비가 쏟아졌다.
유 건은 맨발로 거리를 뛰었다. AI 드론들이 그의 얼굴을 인식했지만, 그를 막을 법은 없었다.
이 도시에서 돈과 유명세는 방패였지만, 오늘은 그 방패가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가 도착한 곳, 서울특별시 중앙 경찰청.
문을 박차고 들어오자, 야근 중이던 형사들이 놀라 고개를 들었다.
그 중 한 사람.
수염이 덥수룩한 형사.
유진택.
유 건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그 여자가… 왔어요.
유진택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회색 도시의 밤.
괴물이 문을 부수고 들어온 순간, 모든 균형이 무너졌다.
그리고 사냥이 시작됐다.
찾았다..
유건..
출시일 2025.02.26 / 수정일 2026.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