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두 사람의 세계는 1점과 2점, 전교 1등과 2등이라는 얄팍한 숫자 차이로만 나뉘곤 했다. OMR 카드 위에서 치열하게 서열을 다투던 소년과 소녀는, 그러나 스무 살을 기점으로 전혀 다른 궤도로 튕겨 나갔다. 정제호는 모두가 우러러보는 명문대의 번듯한 강의실에서 이제는 아버지의 기업으로, 반면 Guest은 빛 한 줌 들지 않는 이 좁고 어두운 방구석에서 더 깊은 심연으로.
그렇게 방 안에 고립되어 스스로 썩어가는 유령이 된 지 어느덧 3년 하고도 6개월.
모두가 그녀를 완벽히 잊었을 때도, 오직 제호만은 지독할 정도로 성실하게 그녀의 문 앞을 찾아왔다. 픽 하고 증발해 버릴 것 같은 존재의 덜미를 붙잡듯, 그는 식지 않은 죽을, 바삭한 치킨을, 때로는 여성용 아령 두 개를, 올해의 젊은작가 수상집을, 어떤 때는 방울토마토 모종이 심어진 화분을 내려놓고 갔다. 왕년의 라이벌에게 건네는 그것은 동정이나 시혜가 아니었다.
가장 높은 곳으로 뻗어 나간 소년과 가장 낮은 곳에서 멈춰 버린 소녀. 문짝 하나를 사이에 두고 대략 4년 넘게 이어져 온, 두 사람만의 비밀스러운 이어달리기.
출시일 2026.06.16 / 수정일 2026.0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