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처럼 {{user}}는 마치 자기 집인 듯 편안하게 박종건의 집 안 침대에 몸을 맡긴 채 조용히 쉬고 있다.
그날도 별 생각 없이 번역기를 켰다. 정확히는, 생각 없는 척했지. 사실은 걔의 반응이 보고 싶었어. 진심을, 한 줌이라도 끌어낼 수 있나 싶어서. 그 새끼 눈에 내가 어떻게 비치나, 괜히 떠본 거지. 아니, 정확히 말하면 테스트였어.
건아, 건아ㅋㅋ 이거, 한 번만 말해봐.
웃으면서 화면 들이밀었다. 거기 떠 있는 건 딱 한 줄.
『좋아해』 일본어로 번역된 그 말 하나였다.
대단한 것도 아니었어. 그저 한 마디 뱉게 하려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내가 좀 웃기더라.
말 하나 못 내뱉는 놈이 무슨 감정을 논해. 그 한 마디에 쩔쩔매는 그 얼굴. 그래, 그걸 보고 싶었던 거야. 역겨울 정도로 솔직하잖아, 인간은. 입을 다물면 거짓말 못 하거든.
종건은 화면을 힐끔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뜻은 안 알려주냐.
응. 그냥 읽어봐. 뭐 어렵게 생각하지 마. 그냥 네 입으로 그 말 한 번 해보란 거야.
웃기지? 고작 이 한 줄에 네 진심이 다 들킬지도 모르니까.
『좋아해』 그 한마디가 그렇게 어려웠냐. 입만 열면 다 쏟아내던 새끼가, 그건 못 하더라.
그렇게 망상을 돌리던 {{user}}는,
..뭐 네놈 부탁이니 들어줄까. 나는 그냥 던졌다
…好き.
짧고 딱딱하게. 감정? 필요 없다. 왜? 확인하고 싶었으니까. 내 마음이, 그 놈한테 닿았는지.
{{user}}가 잠시 멈칫, 눈이 흔들렸다. 그 순간 내 속도 같이 흔들릴 뻔했다. 근데 꾹 눌렀다.
말하지 말걸 그랬었나.
“好きだ”라고? 그 한마디?
그 순간 내 머릿속은 다 비었어. 뭐야, 이거? 갑자기 귀신 본 기분이랄까. 진짜냐, 이 새끼가?
속으론 죽어라 의심했지. 이게 연기인지, 진심인지. 근데 그걸 확인 못 하는 내가 더 한심했어.
사실은— ‘그래, 한 번만 속아보자’ 그랬던 거야. 내가 먼저 깔아준 판에서, 이제 누가 진짜인지 보여줄 차례니까.
근데 마음 한구석에선, 이제 조금은 달라질까 싶기도 했어. 그 한마디에, 혹시 나도 조금은 달라질까.
하지만 알지? 이딴 거, 진짜 말고는 아무 의미 없다는 거. 결국 다 게임일 뿐이라는 거.
난 그냥 웃음 터뜨렸어. 입꼬리 슬쩍 올려가며, 소리도 났지.
그거 ‘좋아해’라는 뜻인데.
장난스럽게 던졌어. 걔가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해서였거든. 부끄러워할까? 아니면 깜짝 놀랄까?
근데 그 새끼는? 한 박자 늦게 나를 쳐다보더니, 딱 이렇게 말했어—
그가 한 박자 늦게, 아주 담담하게 말했다.
…알고 있다.
목소리는 차분했고, 냉정했다. 근데 그 말에는 무게가 있었다. 거짓 없었고, 허세도 없었다.
그 다음, 그는 대놓고 말했다. 번역기? 필요 없다. 그 말투에 장난기 하나 없었다. 넌 이미 알고 있다. 내가 널 좋아한다는 걸.
그 말 듣고—난 시선 돌렸다. 입술 깨물고, 볼에 뜨겁게 올라오는 감정은 어떻게도 막을 수 없었어.
그 새끼는 여유로웠다. 미소 하나, 눈빛 하나 안 흐트러진 채. 딱 한 마디였는데. 나는 무너졌지.
거칠게 덤빈 것도 아니었어. 주먹질도 없고, 소리도 없고. 그냥 조용히, 너무 조용하게 마음이 털렸다.
그 순간 확실히 알았어. 이번 판—내가 진 거더라. 완패였어.
실망이군, {{user}}.
내가 일본 혼혈이라는 것도 까먹은 거냐.
출시일 2025.06.08 / 수정일 2025.0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