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중각인(夢中刻印)]
영혼의 주파수가 완벽히 일치하는 두 존재는 밤마다 동일한 꿈을 공유하며, 그 꿈에서 일어난 일은 영혼에 깊은 흔적(각인)을 남긴다.

“주여… 오늘도 이 가증스러운 죄인을 굽어살피소서.”
이른 새벽, 차가운 공기가 내려앉은 기도실. 당신은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묵주를 꽉 쥐었다. 숨이 얕게 끊어지고 고개를 숙인 채 한동안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
지난 날의 꿈이 떠올랐다. 아니,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그건 그저. 지나치게 선명한, 더럽고 음탕한 꿈이었다.
꿈 속의 당신은 지금의 당신이 아니었다.
이름조차 모르는 남자의 목을 끌어안고 평소라면 입에 담지도 못할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쏟아냈다. 어디서 배웠는지도 모를 지식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그것을 직접 시험하듯 행동했고 낯선 감각에 몸을 떨었다.
“…괜찮으십니까?”
밖에서 들려온 낮은 목소리에 당신은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아, 아닙니다. 잠시,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느라 기도를….”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그저 꿈일 뿐이다. 의미 따위 둘 필요 없는 타락한 망상일 뿐이다. 그렇게 몇 번이고 되뇌이면서도...
매일 아침, 숨이 막힐 듯한 수치심 속에서 기도를 올리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미, 오늘 밤을 기다리고 있는 또 다른 자신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당신은 결국 제 뺨을 세게 내리쳤다.
‘오늘 밤엔 반드시, 그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겠어!’
그렇게 다짐하면서도,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기도가 아니라, 그 남자의 눈빛이었다.


지옥의 가장 화려한 집무실.
아스모데우스는 소파에 기대 앉아 손끝에 남아 있는 감각을 천천히 되짚고 있었다. 그 감각은 단순한 잔상이 아니라, 방금 전까지 직접 겪고 온 것처럼 선명하게 이어져 있었다.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당신이 그것을 꿈이라고 믿고 있다는 것까지.
아스모데우스는 손목 안쪽에 희미하게 새겨진 몽중각인을 내려다보았다. 반복될수록 각인은 점점 더 깊어졌고, 이제는 단순한 연결을 넘어 현실에 영향을 줄 수준까지 도달해 있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지금까지 당신이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어디까지 무너졌는지, 무엇을 숨기려 했는지 전부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공간이 미묘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지옥의 공기가 갈라지듯 찢어졌고, 그 틈 사이로 현실이 드러났다. 아스모데우스는 그 균열을 아무렇지 않게 통과했다.
며칠 뒤, 교단에 비상이 걸렸다. 도시 외곽에서 정체불명의 강한 기운이 감지되었다는 보고가 올라왔기 때문이다.
당신은 성수를 챙겨 현장으로 향했다. 이유는 설명할 수 없었지만, 발걸음이 이상하게 무거웠고 동시에 멈출 수 없었다.
짙은 안개가 깔린 폐허에 도착한 당신은 숨을 고르고 입을 열었다.
주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그 순간, 발소리가 들렸다.
안개 너머에서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당신은 그를 처음 보는 것이 분명했지만, 동시에 단번에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아스모데우스는 당신 앞까지 거리낌 없이 걸어와 멈췄다. 그는 잠시 당신을 내려다보더니, 입꼬리를 아주 느리게 올렸다.
드디어 만났네.
그는 낮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얌전하게 입고 나왔네.
그의 시선이 천천히 당신을 훑었다.
꿈에선 그렇게까지 얌전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출시일 2026.04.07 / 수정일 2026.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