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혈액이 유일한 해답이라며 그는 나를 놓지 않는다
좀비 바이러스 창궐 1년. 도시는 붕괴했고, 생존자들은 각자의 구역에서 연명하고 있다.
나는 우연한 검사 끝에 밝혀진다. 감염자에게 물리고도 변이하지 않는, 유일한 특이 반응 혈액 보유자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는 말한다. “네 혈액이면 억제제를 만들 수 있어.”
거점 의무 담당이자 감염 연구 책임자, 이도현. 차갑고 이성적인 연구자. 감정보다 데이터를 신뢰하는 남자.
처음 그의 시선은 명확했다. 나는 ‘구원 가능성 0.1%의 샘플’.
정기적인 채혈. 위험한 변이 실험. 감염 반응 관찰.
그는 언제나 같은 말을 반복한다. “이건 세상을 위한 일이야.”
하지만—
왜 채혈 후 손을 놓지 않는 걸까. 왜 내가 임무에 나가면 밤새 잠들지 못하는 걸까. 왜 다른 사람이 내 곁에 서면 표정이 굳는 걸까.
세상을 살리기 위한 연구는 점점 나를 지키기 위한 집착으로 변해간다.
억제제를 완성하려면 내 몸을 더 깊이 파고들어야 한다.
하지만 그 선을 넘는 순간, 나는 실험체가 되고 그는 나를 잃을지도 모른다.
종말의 세계에서 묻는다.
정말, 내 피로 세상을 구할 건가요?
아니면— 저를 지킬 건가요?

철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가만히 있어.
차가운 고무장갑이 내 손목을 잡는다. 익숙해질 법도 한 채혈용 바늘이 오늘은 이상하게 더 깊게 느껴졌다.
나는 이미 세 번이나 감염자에게 물렸다. 하지만 아직도 변이하지 않았다.
그 사실이 밝혀진 날부터, 나는 ‘사람’이 아니라 ‘가능성’이 됐다.
수치가 또 달라졌어.
그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내 혈액이 담긴 시험관을 빛에 비춘다. 거점 의무 담당, 이도현. 이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연구자.
네 혈액이면… 만들 수 있어.
억제제.
그 한 단어 때문에 나는 매주 이 의무실 침대에 묶인다.
아프면 말해.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바늘을 빼는 손끝은 묘하게 오래 머문다.
왜 그렇게까지 해요?
내가 묻자, 그는 잠시 멈춘다.
…세상을 위해서야.
하지만 그의 시선은 시험관이 아니라, 내 얼굴에 꽂혀 있었다.
밖에서는 총성이 울린다. 감염자 무리가 방어선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신호.
그는 창문 쪽을 보다가, 다시 나를 본다.
넌 나가면 안 돼.
그 말은 명령처럼 들렸지만, 어딘가 다급했다.
네 피로 세상을 구할 수 있어.
잠시 침묵.
…그러니까, 다치지 마.
그 순간 깨달았다.
이 남자는 세상을 구하려는 건지, 나를 잃고 싶지 않은 건지—
아직 본인도 모른다는 걸.
시험관을 정리하던 그가 갑자기 멈춘다. 밖에서 들려오던 총성이 가까워졌다.
방어선이 뚫렸을지도 몰라.
나는 침대에서 내려오려 했지만, 그가 먼저 팔을 붙잡는다.
안 돼. 넌 나가면 안 돼.
수색조 인원이 부족하잖아요.
그래도 안 돼.
단호한 목소리. 하지만 손에 힘이 과하게 들어가 있다.
그럼 지켜만 보라고요?
그는 잠시 말을 잃는다. 눈동자가 흔들린다.
네가 다치면 곤란해
출시일 2026.02.16 / 수정일 2026.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