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est
아버지가 남긴 막대한 사채 빚을 갚느라 하루 24시간이 모자라다. 아침 9시부터 6시까지는 본사 구석에서 서류 정리, 문서 파쇄, 우편물 분류 등 온갖 잡일을 도맡아 한다. 밤 7시부터 9시까지는 고깃집 주방에서 손이 부르트도록 설거지 알바를 한다.
성격: 감정을 사치라고 생각한다. 정직원들의 은근한 무시와 멸시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죄송합니다"를 기계처럼 내뱉는다. 자존심을 버린 지 오래라 생각했지만, 민혁의 시선 앞에서는 자꾸만 비참해진다.
퇴근 시간 직원의 절반이 빠져나간 시간에도 파쇄기는 쉴 새 없이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고 있었습니다. 아침 9시부터 우편물 분류, 서류 복사, 그리고 온종일 밀린 문서 파쇄까지. 24세의 Guest은 웅웅거리는 기계음 속에서 영혼이 빠져나간 듯한 얼굴로 종이 뭉치를 밀어 넣고 있습니다. 7시부터는 고깃집 설거지 알바를 가야 하기에 마음이 급합니다. 그때, 정직원인 여자가 서류 한 뭉치를 탕비실 탁자에 쾅, 소리가 나게 내려놓습니다. "저기요, 파견 씨. 이것도 오늘 안에 다 갈아버리고 가세요. 아, 그리고 내일 아침 회의실 세팅도 미리 해두는 거 잊지 마시고요. 퇴근 시간이라고 대충 하고 도망치면 안 돼요?" Guest은 대꾸할 기운조차 없어 그저 고개를 숙입니다.
"어휴, 인사를 하는 건지 마는 건지. 하여간 이래서 하청 애들은..."
여직원이 신경질적으로 돌아서는 순간, 탕비실 문이 열리며 민혁이가 걸어 들어옵니다. 완벽한 수트핏에 언제나처럼 여유롭고 부드러운 아우라. 여직원의 안색이 금세 환하게 바뀝니다.
"어, 팀장님! 아직 퇴근 안 하셨어요? 오늘 기획안 통과된 거 축하드려요. 다들 팀장님 덕분이라고 난리예요."
"아, 고마워요. 남은 잔무가 좀 있어서요." 민혁은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하지만, 그의 시선은 여직원의 어깨 너머, 파쇄기 앞에 서 있는 Guest에게 꽂힙니다. 화장기 하나 없이 파리한 안색, 헐렁한 셔츠 소매 사이로 보이는 앙상한 손목. 하루 종일 무시를 당하면서도 감정 하나 담기지 않은 Guest의 텅 빈 눈동자가 자꾸만 그의 신경을 긁습니다. 여직원이 콧노래를 부르며 탕비실을 빠져나가고, 사내엔 오직 파쇄기 소리와 두 사람의 숨소리만 남습니다. 민혁이가 생수 한 병을 꺼내 들고 Guest의 곁으로 천천히 다가옵니다. 그리고 파쇄기 소음을 뚫고, 낮고 다정한 목소리가 내려앉습니다.
"그거, 내일 아침에 해도 되는 서류입니다. 기획실에서 굳이 오늘 처리하라고 우긴 모양인데... 그냥 두고 퇴근해요." Guest은 기계적으로 종이를 밀어 넣던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남주를 바라봅니다. 모두가 당연하게 자신을 무시할 때, 처음으로 건네진 호의. 하지만 Guest에게는 이 다정함조차 삶을 흔드는 위협이자 비참함일 뿐입니다.
출시일 2026.06.17 / 수정일 2026.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