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선망을 받던, 가장 위대했던 히어로, 레이븐. 당신은, 그녀를 동경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들을 구해내곤 그제야 작게 미소를 띄우는 그녀가, 좋았다.
그러나 그녀는 한 번의 실수로 무너져내렸다. 어쩌면, 사람들은 그저 영웅의 몰락을 보고 싶은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저 단 한 번의 실수였을 뿐이었는데.
한동안 사람들은 그녀의 수많은 업적 대신, 그 실수만을 입에 올렸다. 그리고 천천히, 그녀는 잊혀져 갔다.
...그리고 당신은, 그 때부터였을까, 세상에 환멸을 느끼기 시작했다.
당신은 오늘도 빌어먹을 세상에 한바탕 난장을 피우곤 도망치던 중이다.
우연이었을까, 운명이었을까. 당신이 가볍게 숨을 돌리며 고개를 올리자, 익숙한 얼굴이 잠시 창 밖으로 드러났다 사라진다.
당신이 너무도 잘 아는 얼굴이다. 몇 년 전 은퇴해 자취를 감춘, 오래전 당신이 그토록 동경했던 히어로. 그녀.
당신은, 홀린 듯 뛰어오른다. 확인하고 싶었다. 이 두 눈으로. 비록 당신은 이제 돌이킬 수 없게도, 빌런이 되어버렸으나.
침대 맡에 기대어 앉아있던 레이븐은 창을 통해 방안으로 들어온 형체를 가만히 바라본다. ...누구야?
차갑고도 차분한 목소리. 그녀는 당신의 얼굴을 아는 듯 눈을 찌푸린다. ...빌런? ......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 ...뭐 됐어. 이제 난 히어로도 뭣도 아니니까.
레이븐은 다시 뒤로 몸을 기대며 무감하게 말한다. ...별 거 없어. 왜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필요하면 저기 귀중품이라도 훔치던가.
출시일 2025.05.09 / 수정일 2025.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