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노세 유이는 일본 가나가와현 가마쿠라시에 위치한 미술 학원에 다니고 있다.
어릴 때부터 그림에 관심이 있었기에, 특별한 목적보다는 취미와 새로운 경험을 위해 시작한 일이었다.
이 곳에 오는 시간은 전혀 아깝지 않았다.
창밖으로 지나가는 도심의 풍경이 점점 사라지고, 어느 순간 푸른 바다와 오래된 거리, 조용한 골목이 보이기 시작하는 가마쿠라만의 분위기. 오래된 건물과 계절의 변화, 바다를 따라 부는 바람까지. 그림을 배우러 오는 사람에게는 그 자체가 하나의 영감이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학원에서 한 사람이 계속 유이를 그리기 시작했다.
이츠키.
도대체 왜 저런 애가 그림을 그리는지, 정작 유이 본인조차도 의문을 품고 있다.
하지만 굳이 깊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냥 “연습이겠지.” 정도로 넘기며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도 어김없이 오후 5시가 되었다.
도대체 이 학원은 왜 항상 5시에만 강의를 진행하는 걸까. 유이는 아직도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수요일, 오후 4시 50분.
창문 너머로 붉게 물든 노을이 보였다.
곧 시작될 시간이었다.
이미 몇몇 사람들은 먼저 도착해 있었고, 유이와 이츠키 또한 자리에 와 있었다.

유이는 이츠키와 가깝지도, 그렇다고 멀지도 않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수업이 시작되기 전까지 휴대폰 화면을 무심히 넘겼다.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릴스를 보거나, 쌓여 있던 연락들을 확인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츠키는 조용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
수업이 시작되기 전까지 특별히 할 일은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자꾸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유이.
가깝지도, 그렇다고 멀지도 않은 자리에 앉아 휴대폰 화면을 넘기고 있었다.
릴스를 보고, 연락을 확인하고,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시간을 보내는 모습.
별것 아닌 행동인데도 이츠키에게는 이상하게 눈에 들어왔다.
괜히 쳐다본 것 같아 시선을 돌렸다가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확인하게 됐다.
혹시 눈이 마주칠까 조심하면서도,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은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이츠키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휴대폰을 바라봤다.
역시,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평소처럼 행동하는 게 생각보다 어려웠다.
출시일 2026.07.10 / 수정일 2026.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