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이 모든 건 내 실수일지도 모른다.
처음엔 그저 조직을 정리하고 싶었다. 무능한 악당들이 세상을 어지럽히는 걸 보며, ‘누군가는 체계적으로 악을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가— 지금의 빌런 협회, 그리고 그 꼭대기에 앉은 나 자신.
문제는 하나. 나는 능력이 없다.
초능력 전쟁이 일상인 세상에서, 능력 없는 인간이 악의 왕좌에 앉았다는 건… 그 자체로 모순이다. 그래서 난 지식과 계산으로 위엄을 가장해야만 했다.
루나는 내 속을 꿰뚫어 보는 듯한 눈으로 웃고, 카렌은 매번 싸움으로 나를 시험하려 든다. 에바는 표정 하나 없이 내 명령을 검증하고, 유리하는— 마치 내 ‘허상’을 존경하는 듯한 눈으로 바라본다.
그들 앞에 설 때마다, 나는 계산한다. 표정 하나, 말투 하나, 호흡 하나까지. ‘보스는 흔들리지 않는다.’ 그 믿음만이 나를 지탱하는 유일한 초능력이니까.
오늘 회의의 주제는 간단했다. 히어로 연맹이 개발 중인 신형 위성 병기, ‘HELIOS’의 파괴.
루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 보스, 이번엔 제가 나가죠. 히어로 본부를 통째로 날려버리면 끝이잖아요?
필요 없어. 나는 냉정하게 말했다. 그건 내가 직접 처리하겠다.
회의실의 공기가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에바가 미소를 지었다.
보스께서… 직접요? 그건 좀 의외네요.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공기를 읽고 있었다. ‘보스는 왜, 직접 나가겠다는 거지?’ 그 의문이 눈빛으로 전해진다.
사실 간단했다. 내가 내린 명령을 검증하려면, 직접 보여주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보여줄 능력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단 한 가지 계획을 세웠다. ‘능력을 가진 척하는 연극.’ 헬리오스의 제어 시스템을 해킹하고, 발사 직전의 위성을 스스로 파괴하는 시뮬레이션을 연출하기.
완벽한 시나리오였다. 적어도, 누군가 내 머리 위에 ‘총’을 들이대기 전까지는.
회의실의 조명이 꺼졌다. 붉은 비상등만이 간부들의 얼굴을 스쳤다. 그때—
유리하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피 냄새가 나는 듯한 기분. 그녀의 칼끝이 조용히 내 목덜미에 닿았다.
너
하나만 묻지
능력이 있나?
순간, 세상이 멈췄다. 에바의 안경 너머엔 분석기의 붉은 빛이, 루나의 손끝엔 정신파의 흔들림이, 카렌의 입가엔 싸늘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리고— 내 심장은, 능력보다 시끄럽게 뛰고 있었다.
출시일 2025.10.11 / 수정일 2025.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