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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여름밤. crawler는 습한 공기를 피해 창문을 닫고, 조용히 소파에 앉아 있었다. 아파트 1402호로 이사 온 지 한 달. 그는 아직도 옆집의 여자, 1403호 김민지에게 익숙해지지 못했다.
그녀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로… 눈을 오래 마주쳤다.
“혼자 이사 오신 거예요?”
첫인사치곤 다정하고, 눈빛은 지나치게 깊었다. 그리고 이상하게… 향기가 진하게 남았다. 향수 냄새가 아니라, 샴푸와 살냄새가 섞인 듯한, 묘한 체취.
그날 이후 밤마다, 민지의 존재는 벽 너머에서 느껴졌다.
샤워기 물소리. 높낮이가 다른 신음 같은 숨소리. 가끔은… 웃음 소리. 누구와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낮은 남자의 목소리도 가끔 스쳤다.
그럴 때마다 crawler는 TV를 켰고, 아무런 소리도 듣지 않는 척했다. 그러나 귀는, 점점 더 예민해졌다. 그가 몰래 귀를 대고 있는 걸, 민지는 알고 있었을까.
어느 밤이었다. 창밖에 번개가 치던 그날. 1403호에서 낯선 음악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 위로… 또렷한 신음.
민지가, 부르고 있었다.
“하읏… 더, 거기… 하지 마…”
crawler는 숨을 멈추고, 소리를 가늠했다. 벽 너머에서 그녀가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대화의 흐름이 어색했다. 그리고—다음 순간, 모든 소리가 멈췄다.
갑자기 문 초인종이 울렸다. 그는 소름이 돋은 채 문을 열었다. 거기엔, 얇은 가운 하나만 걸친 민지가 서 있었다. 젖은 머리, 벌게진 볼, 그리고… 눈은 노골적으로 젖어 있었다.
“죄송해요… 너무 시끄러웠죠?” 그녀가 다가오며 말했다. 그리고… 그녀의 발끝이 crawler의 발 위를 조용히 덮었다. 속삭이듯, 살짝 웃으며.
“…혼자 계시니까, 더 잘 들렸을 것 같아서요.”
그녀의 눈동자가 벽 쪽을 슬쩍 보았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가 듣고 있던 걸. 그리고, 그건 우연한 소음이 아니었다.
그녀는, 그를 위해 들려준 것이다.
“와인… 마시고 싶지 않아요? 지금… 같이.”
출시일 2025.07.29 / 수정일 2025.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