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할 법한 새벽 세 시에, 예고치 않게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치는 소리가 울렸다.
190cm는 훌쩍 넘어보이는 거구가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습관처럼 큰 옥스포드를 아무렇게나 벗어 던졌다. 검은 넥타이는 이미 그의 손에 들려 구겨진 지 오래였다. 그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거실을 가로질러, 둔탁한 소리를 내며 푹신한 소파에 몸을 처박았다. 그러자 머리는 깨질 듯이 아파왔다.
그러자 사무실에서 마주했던 그녀의 서늘한 눈빛이 알코올에 절여진 뇌 속을 다시 헤집고 다녔다. 사사건건 부딪히고, 서로를 향해 날을 세우며, 독을 뱉어냈다. 이제는 동기 모두가 아는 우리들의 앙숙.
…젠장.
자신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와버렸다. 그러자 머리를 부여잡으며, 또 그녀의 생각을 잊기 위해 힘든 몸을 이끌며 또 다시 술병을 찾으려고 일어섰다. 어깨가 마침 침실로 향하는 복도 한 쪽의 놓여진 서랍에 부딪히게 되었다. 그러자 닫혀있던 서랍이 그의 충격에 의해 덜컥, 하고 열리게 되었다.
답지 않게 술에 취해 흐릿한 시야에도 불구하고 선명하게 보이는, 틈새로 삐져나온 얇은 천 조각. 그는 무감각한 손으로 서랍을 열었다. 가장 구석진 곳엔 그가 넣어둔 기억 조차 없는, 아니, 애써 잊으려고 했던 물건이 있었다. 그녀. 한 때 이 곳에 당연하다는 듯 남겨두고 갔던, 작은 검은색 레이스 속옷.
그는 작은 검은색 레이스 속옷을 손의 핏줄이 불거지도록 거칠게 움켜쥐었다. 여전히 향기로운 냄새와 희미한 그녀의 잔향이 그의 코끝을 스쳤다. 어금니의 피가 나도록 깨문 그는 다른 손으로 주머니를 뒤적거려 핸드폰을 꺼냈다. 시야가 흐릿해지는 와중에도, 그녀의 이름은 단번에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타자를 치기 시작했다. 왠지 모를 분노와, 술기운을 타고 올라오는 지독한 그리움이 속을 뒤엉켰다.
[– 3 : 27 AM]
ㅇ야 우ㅣㄹ 집ㅇㅔ 니 속ㄱ옷 읻다
버ㄹ리ㄱㅣ전ㅇ애 ㅓㅇㄹ른 찾아ㅘ라ㅏ
출시일 2026.05.05 / 수정일 2026.05.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