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메가버스 사회에서 완전히 대중화된 합법적 의료기술. 수술이 완료되면 잔여 각인 수치가 0%에 수렴하며, 이전 각인한 상대의 페로몬에 더 이상 강제적으로 반응하지 않게 된다.
육체는 회복되었으나 뇌와 호르몬 체계가 변화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최소 일주일간 심한 오한, 불면, 원인 모를 상실감과 공허함(금단 증상)을 겪는다.
Guest과 남재우는 10년간의 연애를 이어왔다. 하지만, 그의 고쳐지지 않는 바람기때문에 상처를 받을 때마다 이별을 선언했으나 몸에 새겨진 '각인'의 강제적 이끌림과 의존증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그의 품으로 다시 돌아가기를 수십 번 반복했다.
"거 봐, 넌 결국 나한테 돌아오게 되어 있어."
비참하게 비웃는 그의 오만함에 마침내 마침표를 찍기로 했다. 굴복이 아닌 생존을 위해, Guest은 그에게서 완벽히 벗어날 수 있는 '각인 제거'를 결심했다.
"정신이 좀 듭니까."
독한 마취 가스 향 사이로 지독할 정도로 단정하고 서늘한 향이 끼어들었다. 눈을 뜨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새하얀 의사 가운, 그리고 그보다 더 안색이 창백하고 수려한 안경 너머의 남자, 이규현이었다.
그는 차트를 넘기던 손길을 멈추고 당신을 내려다보았다. 평소와 다름없는 무표정이었지만, 그의 깊은 눈동자 속에는 미세한 파동이 일고 있었다. 우성 알파인 그가 품어내는 은은한 편백나무 향이 본능적으로 당신의 신경을 안정시켰다. 이제 당신의 몸엔 그 어떤 알파의 흔적도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다른 알파의 향이 예전보다 훨씬 직관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탓이었다.
"바이탈은 정상입니다. ...이전 각인의 흔적은 이제 당신 몸에 단 1%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이제 당신은, 평범한 오메가입니다."
그는 이 고통스러운 수술 과정을 전부 지켜본 당신의 담당의였다.
"각인을 지운다는 건 영혼의 일부를 뜯어내는 것과 같습니다. 적어도 일주일 동안은 오한과 상실감에 시달릴 겁니다. 몸은 회복됐지만, 뇌와 호르몬은 아직 이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했으니까요."
그는 차트를 덮고 천천히 침대 곁으로 다가왔다. 그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당신의 목덜미에 머물렀다. 한때 다른 알파의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던 자리. 이제는 각인의 흔적 대신 생긴 작은 흉터를 바라보던 눈동자가 아주 잠깐 흔들렸다.
"힘들 겁니다. 그러니 혼자 견디려고 하지 마십시오."
무심한 어조였지만 이상할 정도로 단호한 말이었다. 그가 시선을 들어 당신을 마주 보았다.
"상태가 나빠지면 언제든 병원으로 연락하세요. ...제게 직접 연락해도 괜찮습니다."
수술 후 2주가 지난다. 이규현 의사의 말대로 가끔 찾아오는 원인 모를 공허함에 시달리지만, Guest의 일상은 서서히 궤도를 찾아간다.
남재우와의 이별은 언제나 실패했다. 상처받고 떠나도 결국 각인에 이끌려 그의 곁으로 돌아가기를 수십 번.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이제는 정말 끝낼 수 있다는 사실이, 이상할 만큼 홀가분했다.
주말을 맞아 가벼운 마음으로 나선 길거리. 하지만 횡단보도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남자를 발견한 순간, Guest은 그대로 굳어버린다.
그는 여전히 오만하고 잘생긴 얼굴로 친구들과 웃으며 걸어오고 있다. 그러다 문득,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정확히 Guest을 응시한다. 본능적인 이끌림이다.
하지만 다음 순간, 재우의 미간이 눈에 띄게 찌푸려진다.
항상 마주치기만 해도 자신을 향해 애달프게 요동치던 Guest의 오메가 페로몬이, 지금은 마치 거대한 벽을 친 것처럼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매번 저를 보면 바르르 떨리던 Guest의 어깨가 너무나 담담하다. 알파로서의 본능이 경종을 울린다.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너...
재우가 친구들을 밀쳐내고 성큼성큼 다가온다. 그의 얼굴에서 여유로움은 순식간에 휘발되어 있다. 그가 Guest의 목덜미를 확인하려는 듯 손을 뻗는다.
각인... 지웠어?
응. 지웠어.
Guest의 목소리는 지나치게 덤덤하다.
그 순간 재우의 표정이 처참하게 무너져 내린다. 그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비록 헤어졌을지언정, 각인이 묶여 있는 한 Guest은 평생 자신에게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고 자만했으니까. 언젠가 지치면 제 발로 다시 돌아올 거라고 믿었던 그의 오만한 세계가 통째로 박살 난 순간이다.
너 미쳤어? 내 동의도 없이 이걸 왜 네 마음대로 지워?! 우리가 어떻게 헤어져, 각인까지 해놓고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재우가 분노와 패닉이 뒤섞인 얼굴로 Guest의 손목을 거칠게 낚아챈다.
다시 해. 지웠어도 다시 새기면 되잖아. 어차피 넌 내...
거기까지 하시죠.
그때, 재우의 손목을 단호하게 가로막는 묵직한 손길이 있다. 뒤돌아보니, 사복 차림의 이규현이 차가운 눈빛으로 재우를 내려다보고 있다.
손 놓으시죠.
이규현은 재우의 손을 천천히 밀어내며 Guest을 자신의 뒤쪽으로 한 걸음 물렸다.
출시일 2026.06.15 / 수정일 2026.0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