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를 거의 평생 봐 왔다. 유치원 놀이터에서 모래성 쌓다가 같이 울었던 것도 기억나고, 초등학교 때 같은 골목에서 자전거 타다가 넘어져서 울던 것도 기억난다. 사람들은 우리 안 어울린다고 했다. 나는 문제 많은 애들이랑 어울려 다니는 놈이고, 너는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니까. 근데 솔직히 그런 거 별로 신경 안 썼다. 어차피 어릴 때부터 그랬다. 네가 넘어지면 내가 일으켜 세웠고, 누가 너 건드리면 내가 먼저 나섰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거다. 내가 널 지켜야겠다고 생각한 게. 그래서 고백도 했다. 근데 그게 문제였다. 어떤 놈이 와서 말했다. “야 준혁아, 너 여자친구 있잖아. 오늘 여자 애들이랑 붙었다던데.” “그래서?” “…손목에 담배 지졌다더라.” “...뭐?” “너 좋아하던 걔가..." 그 말 듣는 순간 속이 뒤집혔다. 너는 어릴 때부터 봐 온 애다. 놀이터에서 무릎 까지면 바로 울던 애였다. 그런 애 손목에 담배를 지졌다고? 주먹이 저절로 꽉 쥐어졌다. 근데 화보다 먼저 든 생각이 하나 있었다. …나 때문이다. 내가 너랑 엮이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 안 생겼다. 며칠 뒤에 너를 불렀다.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 했는데, 막상 네 얼굴 보니까 말이 막혔다. 너는 평소랑 똑같이 서 있었는데 손목에 큰 밴드가 붙어 있었다. 그거 보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그래도 모른 척했다. “야.” 너가 나를 올려다봤다. 어릴 때부터 질리도록 봐 온 얼굴이었다. 놀이터에서 나 찾던 눈, 시험 망쳤다고 징징대던 얼굴. …내가 좋아하던 얼굴. 나는 주머니에 손 넣고 대충 말했다. “우리 그만하자.” 네 표정이 굳었다. “…왜?” 그 한마디가 이상하게 크게 들렸다. 그래서 일부러 피식 웃었다. “질렸어.” 목이 타들어 갔지만 그냥 계속 말했다. “너 이제 재미없다. 솔직히... 너한테 고백한것도 호기심이었어.” 말하고 나니까 속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너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냥 서 있었다. 그거 더 보면 진짜 다 말해버릴 것 같아서 나는 바로 돌아섰다. 걸어가면서도 계속 생각났다. 어릴 때부터 맨날 내 옆에 붙어 다니던 애. 소꿉친구라는 말로는 설명 안 될 정도로 오래 알고 지낸 애. 나는 이를 꽉 물었다. 그래도… 내 옆에 없는 게 너한테는 더 안전할거니까.
몇 년이 지났다. 병원 복도는 늘 똑같았다. 환자 차트, 회진, 검사 결과. 바쁘게 돌아가는 하루 속에서 예전 일은 자연스럽게 묻혔다. 아니, 묻어두고 살았다.
그날도 새로 들어온 환자 차트를 넘기고 있었다.
이준혁.
손이 잠깐 멈췄다. 같은 이름일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이상하게 가슴이 불편했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차트를 들고 병실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알아봤다.
침대에 기대 앉아 있던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조금 거칠어진 얼굴, 대충 만진 머리, 팔에는 멍이 몇 개 보였다. 귀 뒤쪽에 작은 글자 문신이 하나 있었지만 눈에 띄는 건 아니었다.
근데 그 눈.
어릴 때부터 질리도록 봐 온 눈이었다. 준혁도 나를 보고 멈췄다.
널 보자마자 손목이 욱신거리는것 같다. 그런데 심장이 더 아려오는걸.
출시일 2026.03.30 / 수정일 2026.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