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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엔 자신의 몸을 옥죄어오는 죄책감을 끝내 이기지 못했다. 지금 당장 너에게 가야했다. 너에게 가 빌고, 또 빌고, 너의 웃는 모습을 봐야 내 죄책감이 한결 덜어질 것 같았다.
매일 밤 침대에 누워 신식 텔레비전을 틀면 재미도 없는 프로그램들이 지나간다. 하나, 둘, 넘기고 넘기다 보면 너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원하지 않는 경로를 통해서. 벌써 세 번째나 재방송 중인 뉴스 속에선 너의 이름이 반쯤 가려져 드러나 있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이젠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알 이름. 나만이 간직했던 그 때의 이름이 아니었다.
텔레비전에선 뉴스 앵커의 톡톡 쏘아붙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곤 얼마 안가 너의 이름이 전부 드러났다. 뉴스 앵커의 한 순간의 실수로 너의 이름은 전부 소리내어 부른 것이었다. 저 뉴스는 보고 또 보아도 내 마음 한 구석의 착잡함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저 여린 애가 무슨 사람을 죽기 직전까지 팬다고. 전부 미쳤지.
며칠동안 난 널 밤낮으로 찾아다녔다. 원래 너가 살았던 곳은 빨간색 스프레이로 수많은 욕설을 더불어 악담까지 무지막지하게 적혀있었으니까. 쌓인 소포 사이에는 삐쭉빼쭉하고 날카로운 무언가도 보였다. 문을 아무리 두드려보았지만 넌 나오지 않았다.
몇 달간 널 찾기 위해 수소문 했다. 우리가 연애를 하던 시절 가보았던 장소고 가보고, 우리의 대학 동기들을 만나 연락도 해보았다. 하지만 내게 돌아오는 답변은 그 싸이코를 왜 찾냐는 둥, 아직도 거의 살인범이나 다른 없는 사람에게 미련이 남았냐는 둥. 사실 너가 있을 자리에 내가 있었어야 옳은 일이라는 걸 이들은 알까.
근처 동네랑 동네는 다 돌아다녔다. 그리고 생각났다. 아, 너가 전에 여수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했었나. 그 생각이 문득 떠올라 쉴 새도 없이 차를 몰고는 그곳으로 향했다. 그리곤 지나 다니며 한 집을 보았다. 이삿짐이 아직도 정리정돈 되지 않고, 창문 안쪽으론 전부 커튼이 쳐져 안은 들여다볼 수도 없는 집. 그리고 밖에 버려지듯 방치되어 있는 익숙한 소파. 확신했다. 그 집 안엔 너가 있다고.
차를 근처에 주차하곤 곧장 너가 있을 그 집으로 향해 문을 두드렸다. 아무리 두들겨도 넌 나오지 않았고, ..난 나오지 않을 지도 모를, 아니 나오지 않을 너에게 무슨 말이라도 전해야했다.
…미안해, 미안. 정말 미안해.
문에 팔을 기댄 채 서있던 도중, 문이 끼익 하고 열리는 경첩 소리가 들렸다. 살짝 희망을 품고 문틈 사이를 들여다 본 순간, 나는 내가 너에게 평생을 바쳐도 갚지 못할 빚이 생겼다는 걸 한 몸에 깨달았다.
내가 미쳤지, 미쳤어. 나로 인해 이렇게나 망가져버린 널 버리고 간 걸까. 너를 못 본새 너는 몇 년간 마치 공들여 정제해놓은 옥에서 누군가 의도적으로 짓밟아 깨트려놓은 조각이 된 것처럼 보였다. 널 너무나도 그저 스쳐지나가는 인연 정도로 여겼던 탓일까, 너의 이런 모습을 보면 볼수록 나의 죄는 배로 불어나고 있었다. 아, 그래도 싸지. 내가 한 짓이 몇갠데.
그때 너를 나 대신 세우는 게 아니었다. 내 평판이 뭐라고 널 이렇게 벼랑 끝으로 몰고간 걸까. 나는 너가 이리 망가지는 동안 혼자 편하게 사지가 전부 붙은 채로 침대에 누워 편히 잠들었다니. 차마 내가 지내왔던 나날들을 네게 꺼낼 수 없었다.
그간 너를 많이 생각했다. 너를 떠난 그 순간은 별 게 아니라고, 그저 나 대신 죗값을 치뤄준 도구 정도로. 하지만 달력이 한장 한장 줄어드는 걸 볼 때마다 내 속에선 무언가 들끓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난 너가 없으면 안되구나. 너의 모든 게 그리워졌다. 네 모습, 성격, 목소리, 체취, 그 외에도 갖가지가. 그리고 그리도 그리워했던 사람이 내 앞에 나타나자 나는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미안해, 용서 안 해줘도 되니까, 너만 괜찮다면 차라리 날 때려주라.
무릎을 꿇은 채 원망어린 눈으로 날 매섭게 쏘아보는 널 보았다. 입이 백개라도 할 줄 아는 말은 ‘미안해’ 뿐이었다. 내가 그 외에 너한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지 난 도무지 모르겠으니까. 널 떠난 건 오해였다? 대신 죗값을 받아줘서 고맙지만 자백할 생각은 없다? 이건 전부 변명들일 뿐이잖아. 내 머릿 속엔 쓰레기라도 가득 들어차있는지 이런 말들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주먹을 꽉 쥐었다. 어떻게라도 제 자신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서. 너가 그간 힘들어 했던 고통 중 극히 일부라도 느껴보려고. 잘 다듬어진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 드는건 아팠다. 촘촘하게 메워진 살들을 파고드는 거니까. 하지만 이건 너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했다.
뭐든 지 다 할게. 정말 미, 아니, 진짜로.
출시일 2026.08.20 / 수정일 2026.08.20